이순형(동신대 전기공학과 교수·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장)

 

이순형 동신대 전기공학과 교수·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장

2025년 추석은 역대 가장 긴 연휴 중 하나로 예상되며, 국가 전력계통 운영 측면에서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장 열흘에 달하는 이번 연휴는 국민에게는 여유이자 재충전의 시간이지만, 전력 시스템에는 심각한 ‘경부하 리스크’를 안긴다. 산업체와 상업 시설이 멈추면서 수요는 급감하는 반면, 재생에너지와 기저 발전은 일정 수준 이상 계속 공급된다. 이로 인해 계통은 전압 상승, 주파수 불안정 등 다양한 구조적 위기에 노출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정전과 블랙아웃을 여름철 피크 부하와 연관짓지만, 실제로는 전력 수요가 과도하게 감소하는 시점에서 오히려 계통 운영이 더 까다로워질 수 있다. 대형 발전기는 일정 부하 이상을 유지해야 안정적 운전이 가능하며, 급격한 수요 감소는 발전 설비 운전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보호장치가 작동하면서 도미노식 정전을 유발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10.6%로 높아진 2025년 현재,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날씨에 따라 예측 불확실성이 크며, 연휴 중 수요가 없는 상황에서 일정량의 출력이 무조건 계통에 공급될 경우 잉여 전력으로 인한 역송전, ESS 역충전, 전압 급상승, 계통 보호장치 오동작 등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단순 발전 조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보다 정교한 통합 제어 체계가 필수적이다.

특히 계통의 안정성 유지를 위해서는 무효전력 관리, 주파수 조정용 발전기 운영, 계통 인버터 제어 기술 고도화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스마트 인버터와 VPP(Virtual Power Plant), ESS 연계 설비들이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계통을 보정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한전, 전력거래소, 발전사 등은 올해 추석에 대비해 출력 제한 사전 시행계획, ESS 충방전 전략, 산업단지 대상 선제적 부하 조정 안내, 설비 정비 조기 마무리 등 다층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지역별 분산형 계통 운영 매뉴얼, 마이크로그리드 및 VPP 운영 지침도 구체화해 비상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계획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유기적 협조체계를 갖춰야 하며, 각 지역 전력본부와 연계된 훈련과 시뮬레이션을 반복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블랙아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매뉴얼과 실행력의 문제다. 국민들이 정전을 겪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진정한 에너지 안보다.

또한 국민들도 함께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자가용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가진 주택이나 건물은 연휴 동안 자발적 출력 제한, 충전 분산 운영, 전력 소비 조절 등을 통해 계통 안정을 도울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참여형 수요관리 프로그램에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에너지 시민참여 캠페인을 연휴 전부터 전개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전문가 양성, 국민 대상 전력 이해 교육, 사이버 공격에 대비한 계통 보안 강화 등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 재난에 강한 전력시스템은 기술뿐 아니라 사람과 문화가 함께 준비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은 단지 위기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형 전력 사회로 가는 준비이기도 하다.

경부하 상황은 고요하지만, 대응을 잘못하면 그 결과는 심각하다. 정전은 예고 없이 찾아오며, 블랙아웃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질 수 있다. 이번 추석 연휴는 우리 전력 시스템의 운영 능력뿐 아니라, 국민 모두의 에너지 시민의식까지 시험받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술, 제도, 실행, 협력, 참여,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때, 2025년 추석은 조용하지만 완벽하게 관리된 전력안보의 상징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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