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형(동신대 전기공학과 교수·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장)

경기도 용인에 조성 중인 초대형 반도체 클러스터는 우리나라 미래 산업의 핵심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사업은 막대한 전력과 용수 부족문제에 직면해 있다. 반도체 공정은 하루 수십만 톤의 초순수와 원전 여러 기에 해당하는 전력을 요구하지만, 용인은 이를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 결국 수도권 외부인 호남에서 전기를 끌어오고, 한강 상류 팔당댐 물을 활용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이는 막대한 비용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국가 균형발전에도 역행한다.
이에 비해 호남 서남권은 풍부한 자원을 갖춘 최적의 대안이다. 전남은 전국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의 20% 가까이를 차지하며, 신안·해남·영암·영광 일대는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과 해상풍력 단지로 주목받고 있다. 이미 5GW 이상의 태양광, 12GW 이상의 풍력이 추진되고 있으며, 이는 반도체 공장이 요구하는 막대한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LNG 발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수도권 모델과는 차별화된다.
용수 자원에서도 호남권은 강점을 지닌다. 영산강 수계와 장흥댐을 기반으로 한 광역상수도는 이미 목포, 영암, 무안, 해남 등지에 산업용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영산강 본류·지류 관리, 하수처리수 재이용, 관로 증설과 해수 담수화를 보완하면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대규모 초순수 원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반면 용인은 신규 댐 건설 좌절과 장거리 송수 의존으로 불확실성이 크다.
환경적 당위성 또한 중요하다. 글로벌 기업들은 RE100, ESG 경영을 강조하고 있으며, 전력의 탄소배출량은 반도체 수출 경쟁력에 직결된다. 호남 서남권의 재생에너지 기반 클러스터는 우리 산업을 탄소중립 흐름에 부합하게 만들고, 국제 무역에서 우위를 확보하게 한다. 용인의 LNG 중심 전략은 오히려 미래 수출시장에서 약점이 될 수 있다.
더불어 균형발전 효과는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처럼 수도권에 첨단산업을 집중시키면 지방은 송전탑과 환경피해만 감수하고, 일자리와 부가가치는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나 호남 서남권에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선다면 수만 명의 고용, 대학과 연구기관의 집적, 청년 인구 유입으로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 동신대학교, 전남대학교, 광주과학기술원(GIST), 에너지공대(KENTECH), 전북대학교 등은 반도체·에너지 분야 학과와 연구소를 연계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 기업과 연계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특히 동신대학교와 에너지공대는 에너지·전기 분야에 강점을 가진 대학으로, 반도체와 재생에너지 융합형 전문인력 배출의 거점이 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지방정부의 전략적 행동이다.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 전라북도는 영산강 수계 관리와 재생에너지 연계 전력공급, 산업용수-하수 재이용 전환 비용, 송배전망 확충 로드맵을 포함한 심층 연구용역을 즉시 착수해야 한다. 지역 대학과 한전, 수자원공사, 광주, 전남, 전북연구원 등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광역 컨소시엄을 꾸려 타당성 검증을 데이터로 증명해야 한다. 관련된 고급 기술자가 없기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해보지도 않고 지역 발전 이야기만 나오면 반복적으로 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결론은 분명하다. 반도체 산업의 미래는 전력과 물, 그리고 균형발전에 달려 있다. 영산강 유역과 서남해 재생에너지 벨트를 품은 호남 서남권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한다. 이제는 수도권 중심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용인이 아니라, 전기와 물이 있는 호남 서남권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을 과학과 데이터로 증명하며 정부와 기업을 설득하여야 한다. 바로 지금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 더 나아가 전라북도 지자체와 지역 대학들이 함께 해야 할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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