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형(동신대 전기공학과 교수·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장)

 

이순형 동신대 전기공학과 교수·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장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나 산업 전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지속가능성, 지역의 자립, 미래 세대의 생존과 직결되는 절박한 과제다. 지금까지의 정책과 구조는 수도권 중심으로 기획되고 실행되었으며 지방은 에너지 생산지로만 기능해 왔다. 특히 호남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면서도 이를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 연결하지 못한 채 소외되어 왔다.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을 바로잡고 대한민국 에너지 대전환을 현실화할 절호의 기회다. 기후에너지환경부의 호남 유치 논의는 단순한 행정기관의 이전이 아니라 국가 정책의 중심축을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의 출발점이다. 지금까지는 수도권 중심의 기획과 집행이 반복되었지만, 이제는 생산과 실천이 이루어지는 지역, 바로 호남에서 새로운 정책 거버넌스를 설계해야 한다.

호남은 이미 준비된 지역이다. 해상풍력, 태양광, 수소, ESS, 스마트그리드 등 다양한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고, 산업단지, 항만, 데이터센터, 전지소재 산업 등 미래 산업과 융합 가능한 요소도 풍부하다. 전남·전북·광주는 하나의 통합된 에너지 생태권으로 연결 가능하며, 국가 단위의 에너지-디지털 융합 산업 클러스터로 성장할 수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러한 현실 위에 구축되어야 한다.

특히 나주 혁신도시에는 한국전력공사, 한국전력거래소, 한전KDN, 한전KPS, 한국에너지공대, 동신대학교 등 에너지 공공기관과 대학, 연구소들이 집적되어 있으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에너지 인프라와 인적 기반이 이미 갖춰져 있다. 이러한 집적화된 기반은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정책 기획과 실행, 실증이 가능한 전략적 입지라 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위기를 함께 해결하는 정책은 더 이상 중앙부처 단위의 관료적 운영만으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현장성과 지역성과 탄력성을 갖춘 에너지 정책 거점이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호남이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과 에너지 민주주의는 중앙이 아닌 지역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에너지는 더 이상 수도권에서 계획만 세우고 지역에 시행하는 구조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가 흐르는 곳에서 기획되고 실현되어야 한다. 호남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지역이며 에너지의 흐름이 시작되는 곳이다. 따라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이곳에 들어선다는 것은 상징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에너지 정의를 실현하는 조치이자 지역이 정책의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가 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전환점이다. 동시에 국민과 국가 전체가 미래의 기후·에너지 질서에 대해 공동 책임을 나누는 시작이기도 하다.

RE100 산업단지, 수소경제, 폐열활용 농어촌 클러스터, 디지털 전력망, AI 기반 산업단지 등은 호남이 이미 실증해온 전략들이다. 여기에 정책 설계·기획·운영 기능이 결합되면 대한민국 전역으로 확산 가능한 새로운 국가 에너지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 지역이 실천하고 중앙이 확산하는 상향식 정책 구조가 이제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은 단지 호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에너지 주권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다.

부산의 해양수산부 이전은 2001년 안상영 전 시장의 제안 이후 24년 만에 이루어졌고, 가덕도 신공항도 30년에 걸친 지역의 지속적 요구와 논리 축적으로 실현되었다. 이처럼 국가의 중심축을 이동시키는 일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호남 역시 지금부터 철학과 당위성을 축적해나가야 하며 향후 5년에서 10년 이내에 실현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당장의 유치도 좋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전략과 사회적 공감대다.

필자는 오랜 시간 에너지 기반 지역균형발전, 지산지소형 전력 구조, 디지털과 전력의 융합,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철학을 주장해왔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반드시 호남이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호남이 바뀌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정책이 바뀌고 미래가 바뀔 수 있다. 지방에서 시작되는 변화가 곧 국가의 체질을 바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의 호남 유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는 지방이 정책의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설계해나가는 첫걸음이다. 이 결단이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100년을 여는 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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