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형(동신대 전기공학과 교수·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장)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는 곳은 바로 호남권이다. 특히 전라남도는 해상풍력, 태양광, 바이오에너지 등 천혜의 자연조건을 바탕으로 전국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4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전기를 많이 만들고 있음에도, 호남은 여전히 수도권과 중부권에 송전만 하는 ‘에너지 생산지’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이다. 에너지를 외부로만 보내는 지역이 아니라 직접 활용하고 산업을 유치하는 ‘RE100 산업지’로 도약해야 한다.
RE100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글로벌 산업 생태계의 기본 조건이다.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RE100은 애플, 구글, 삼성전자 등 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채택하고 있으며 그 기준은 공급망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다시 말해, 재생에너지를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지역이 산업 유치의 결정적 경쟁력을 갖게 되는 시대이다. 이는 호남이 수도권이나 중부권과는 차별화된 전략을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현재 호남의 전력 구조는 전력 생산 이후 대부분을 외부로 송전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 지역 내 산업과의 직접 연계가 거의 없다. 이로 인해 RE100 기반의 제조업, 데이터센터, 수소생산 등 첨단 산업의 정착이 어려운 상태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핵심 전략은 에너지계통 인프라 혁신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고속도로’ 구축을 통해 서남해안을 RE100 산업단지의 중심으로 육성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 과제로 단기간 내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따라서 보다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지산지소형 에너지순환도로’ 모델을 제안한다. 예컨대 22.9kV 배전선로 단일 선로에 20MW급 태양광 발전소 5개소를 연결하고, 각각에 40MW급 ESS를 공동 접속(총 20MW 운영)함으로써 연속 공급 체계를 구성할 수 있다. 이 구조는 계통 접속 대기 중인 재생에너지를 대부분 수용할 수 있는 혁신적인 시스템이다.
이 방식은 에너지고속도로가 완공되기 전까지, 즉 2031년까지도 충분히 지역 내 RE100 수요를 모두 충족하고도 남는 현실적 대안이다. 단일 선로에 최대 100MW까지 연계가 가능해지며 지금까지의 발전되지 않는 연계 방식에 머물고 있는 원시적인 방법을 뛰어 넘는 혁신적인 방법이다. 이를 통해 기업은 안정적 전력 확보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입주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에너지 자립 기반 산업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형성된다. 또한 이 시스템은 국가 계통망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지역 에너지 소비와 산업을 일치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5대 전략을 제안한다.
첫째, 전남 신안, 해남, 영암, 영광, 새만금 등 서남해안과 광주광역시와 연계된 재생에너지 중심지에 RE100 전용 국가산업단지 밸트를 조성해 나가고 전기요금 감면, 세제 인센티브, 토지제공, 전력계통 연계 지원을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분산형 전원의 간헐성을 극복하기 위해 ESS, 수소밸류체인, 해수담수화시설, 마이크로그리드, 실시간 수요반응 시스템을 포함한 스마트 계통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RE100 산업단지를 운영할 전력·ICT·AI 융합형 고급인재 양성을 위해 지역대학과 공공기관, 기업이 함께하는 ‘에너지 디지털 융합캠퍼스’를 설립해야 한다.
넷째, 해상풍력 배후단지와 연계한 기자재 클러스터를 조성하여 유지보수, 해양 엔지니어링, 수출 인프라 산업까지 확장해야 한다. 특히 광양항, 목포신항 등을 전략적 배후 거점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지역민이 직접 참여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주민참여형 에너지 사업을 확산시켜야 한다. 이것이 정의로운 전환의 출발점이다.
호남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다. 재생에너지와 계통 혁신, 산업과 기술, 교육과 인재, 지역과 공동체를 통합하는 실험장이며 대한민국 에너지 미래를 설계할 가장 강력한 중심지이다. 에너지는 멀리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서 나누고 사용하는 것이라는 전환의 인식이 필요하다. 이제는 실천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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