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일발(危機一髮). 머리카락 하나로 천균(千鈞)이나 되는 물건을 지탱하고 있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1천균은 3만근을 의미하니 요즘으로 치면 180t에 해당되는 무게다.

어찌 한 올 머리털로 이 엄청난 무게를 감당할 수 있으리요. 그만큼 급한 상황임을 나타내는 비유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이 그렇다. 곳곳이 뚫리고, 새고, 망가지고 있다. 이 나라가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다. 

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북한군의 ‘노크 귀순’은 우리 군(軍)의 국방태세를 의심케 한다.  왜소한 체구의 북한군은 GOP(전방감시초소)일대의 3중 철책과 최첨단 경계 장비를 모두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북한군 사병은 12분 만에 3중 철책을 모두 넘었다. TOD(열상감시장비)와 슈미트(주간광학감시장비)에도 걸리지 않았다. 군 관계자의 “경계 장비에 사각지대가 있었고 철조망을 벌리고 들어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해명에 기가 막힌다.

60대 남성에게 뚫린 정부중앙청사의 보안도 우리나라의 허술한 보안시스템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이 남성은 가짜 출입증을 이용해 청사 내 교육과학기술부 사무실에 들어가 불을 지른 뒤 투신했다. 정부청사는 3단계의 검색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사고 당일에는 휴일이라는 이유로 금속 탐지기를 꺼두었다. 정상적인 신분증이어야 열리는 스피드게이트 중 한 곳도 열려있었다. 범인은 위조신분증을 보여주고 유유히 게이트를 통과했었다.

지난달 27일에는 경북 구미에서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 이 사고로 5명이 사망하고 주민 300여명이 피해를 입었다. 237만6천m²(72만평)의 농작물과 66만m²(20만평)의 산림이 메말랐다.
 
문제는 이 같은 사고가 전국 곳곳에서 언제든지 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독물질 취급업체가 전국적으로 6천800여 곳에 달하고 있지만 규정을 제대로 지키는 업체가 드물기 때문이다.

울산과 청주 등 산업단지에서 유독성 가스 누출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도 예외는 아니다. 불산보다 독성이 강한 포스겐 가스 취급업체가 6곳이나 된다. 그러나 산업단지의 재난안전관리체계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모두들 “설마~”하며 산다.  독성가스 누출에 대비한 주민 대피시설이나 장비는 열악한 상태다. 만약을 대비한 정책적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안보와 영토문제가 권력다툼의 수단으로까지 등장했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지난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폭로로 지금 여야 정치권은 생사를 걸고 다툼질을 벌이고 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당시 남북정상회담 준비 위원장이었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은 의혹제기의 근거나 증거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만약 정 의원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이는 대통령 선거에 북풍을 몰고 오려는 가증스러운 정치공작이다. 민주당은 “정 의원의 NLL 관련 의혹 발언은 총기난사 사고와 같으며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 정체를 만회하기 위한 초조함과 ‘노크 귀순’으로 드러난 이명박 정권의 안보 무능을 덮기 위한 제2의 북풍공작”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정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더라 하더라도 정상회담 대화내용이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공개된 것은 정부의 국가기밀유지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정 의원은 지난 2009년부터 1년간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냈지만 1급 비밀 문서인 정상회담 대화록을 열람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국가기밀이 정치권의 필요에 따라 권력다툼에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정부의 국가기밀유지와 사후관리 시스템이 그만큼 허술하다는 것이다.

결국 시스템보다는 사람이 문제인 듯싶다. 책임의식과 사명감이 요청된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진실함이 절실하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NLL논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해진다. 국민들만 불쌍하다. 지켜주겠다고, 잘 살게 해주겠다고 군과 정치인들이 내미는 동앗줄이 실은 한 올 머리카락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그런 불안감이 큰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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