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박상신의 소설 ‘이카루스의 강’
<7·혁명속 인연>

“감히 너 따위 년이 나를 배신해?”
따귀 때리는 소리와 함께 여인이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아내 윤희였다.
순간 정길은 달려가려 했으나 그들의 얘기를 좀더 듣고 싶어서 근처 바위 뒤에 몸을 움츠리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널 이만큼 키워줬더니 개가 주인을 무는 격이네. 이년 봐라!”
이는 길문의 목소리였다.

순간 정길은 피난 전 윤희를 기다리다 종로상회에 갔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 윤희는 정길을 보자 당황한 기색으로 머뭇거리다 뭔가 손가방 속으로 숨기는 행동이 떠올랐다.
윤희가 사정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정길씬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제 이 정도 했으면 우릴 놓아주세요. 경부님!”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윤희가 이렇게까지 길문에게 사정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필시 길문과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정길씨의 아이를 가졌어요! 이젠 사람답게 살고 싶어요. 경부님!”
“닥쳐! 이년아! 네가 내 손아귀를 빠져나갈 것 같아?”
“천만에 넌 상상도 못 하는 고통을 맛볼 거야! 이년아!”
“조신하게 내가 시키는대로 해!”
그 얘기를 엿듣고 있던 정길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며 머리가 무거움을 느꼈다.
이내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길문과 윤희가 지금껏 나를 속였단 말인가. 너무나도 당황스럽고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오로지 정길은 윤희를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면서 그녀만 바라보며 그녀가 웃으면 행복했고, 그녀가 힘들거나 어두운 표정을 지워 보이는 날이면 그녀를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였다. 그만큼 윤희를 아끼고 사랑했었다.
잠시 후 그들이 돌아오고 정길은 아무 일도 없는 듯 그들을 대했으나 윤희의 얼굴에 이제껏 보지 못한 그늘을 정길은 처음 보았다.

저녁 끼니를 때우고 정길은 임시숙소에서 떨어진 십여 분 거리의 강가를 홀로 걷고 있었다. 멀리서 포성과 총성이 번갈아 들리며 밤의 적막을 깨우며 밤벌레 소리가 강바람을 타고 들리고 있었다. 아까 본 상황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러다 넓고 편편한 자갈을 주워 강물을 향해 여러 번 던지길 반복하며 마음속 응어리를 달래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던지지 않은 돌이 강물 속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아내 윤희였다.

“여보! 할 얘기가 있어요.”
아내 윤희가 지금껏 함께 살면서 이렇게 진중하게 얘기해 본 적은 처음이었다.
“내가 알아서 안될 일이면 얘기 하지마!”
그랬다. 정길은 윤희와의 행복이 날아갈 것만 같아서 그녀의 말을 막았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