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진화와 세력균형적인 통일론

공진화와 세력균형적인 통일론

19세기 말 동북아의 국제질서는 일본의 근대화를 통한 국력팽창과 한국과 중국의 국력쇠락, 제국주의적 서양 강대국들의 영향력 확대라는 세 가지 사실들의 역학관계가 만들어놓았다.

당시 유럽은 1848년 2월 프랑스 2월 혁명을 통해서 유럽 사회의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을 완벽히 바꾸어 새롭게 하는 변화가 확대되고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의 소산으로서 민족주의와 산업혁명의 결과로서 사회주의가 유럽에 확산되고 있었다. 유럽 국가내의 팽배해진 ‘과다한 민족주의’는 통일된 국가들의 여력을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후진 세계로 뻗어나가는 제국주의 양태로 나타났었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에 유럽의 각 국가 내부에서는 사회주의 세력이 대두하여 계급투쟁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에서 사회주의는 보다 논리적이면서 도덕적이었고 유럽대륙에서는 유물론적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당시 유럽의 민족주의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을 가져왔다. 특히 독일의 분열된 왕국과 지방주의를 통일시켰던 주역으로서 우리는 ‘철혈재상’ 비스마르크(1815∼1898)를 기억한다. 하지만 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을 위한 외교적 노력 중에 프랑스를 고립시키기 위해서 맺은 조약들이 그의 사후 하나씩 허물어지면서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후 유럽 국가들 간의 불신과 반목은 양차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확산되었다. 평화를 위해서는 평상시에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한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북한은 상호 신뢰를 형성하고 있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신뢰조성을 위한 노력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 국가 간 상호신뢰는 공진화와 세력균형에 토대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세력균형을 이루기 위한 국가들 간 노력이 동북아에서 보다 조성될 필요가 있다.

북한정권의 폐쇄성은 태생적 문제에서 비롯된 김일성 일가의 생존을 위한 일종의 자구책이다. 3대에 걸쳐서 독재를 하고 있는 북한정권에는 주변 국가들과의 공진화와 세력균형에 대한 감각이 있을 리 만무하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 북한의 소위 3인방이 한국에 와서 회의를 할 때의 장면들이 공개되고 있다. 2015년 8월 24일 판문점에서 대한민국 대표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 황병서 북한대표가 아시안게임 당시 “남북한이 한 민족으로서 힘을 합하면 세계패권을 가질 수 있다”는 발언을 하고 옆 좌석에 있던 북한 최룡해 조선노동당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들이 갖고 있는 ‘과다한 민족주의’와 ‘패권주의적 시각'은 향후 남북한 대화에서 많은 장애로 등장할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에 대한민국의 대표들은 주변 국가들과의 공진화와 세력균형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대표들일 것이다. 과다한 민족주의는 제국주의, 패권주의로 나아간다. 주변 국가들과의 평화공존적인 노력은 공진화와 세력균형의 평화주의로 나아간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새로운 100년이 시작될 무렵, 당시 유럽인들은 유럽평화를 외치고 전쟁 없는 세상을 희망했다. 하지만 주요 국가들의 왕들이 평화를 지도하는 비인체제는 프랑스대혁명과 산업혁명 이후 확산되어온 자유평등주의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독일제국통일이 또 다른 세계전쟁으로 확산되리라고는 당시 유럽인들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당시 섬나라 영국은 항시 유럽대륙에서 특정국가가 패권을 갖는 것을 경계하면서 세력균형을 추구하고자 했다. 유럽대륙의 세력불균형은 전쟁을 가져오고 영국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어떠한 전쟁도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파괴한다. 만약 향후에 발생할지도 모를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 주변 국가들과의 공진화와 세력균형이 아니고 다분히 ‘과다한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것일 때, 앞서 언급한 유럽사의 비극을 되풀이하고자 하는 역사적 반복은 아닐지 걱정스럽다.
<호남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장>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