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신용보증기금 광주지점 백진수 차장>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의(正義)’라는 어휘가 가진 당위성과 절대성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범 시공간의 언어가 아닌가 싶다. 정의와 공정이란 말이 사회에 회자되고 있다는 것은, 즉 특별히 어느 시대와 장소에서 정의로운, 바르고 의로운, 이 당연한 말이 가치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 우리가 서있는 사회에 불의 혹은 부조리 넘쳐난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마이클 샐던의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가지는 감동을 주는 이유도 아마 일탈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도 사실일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정의롭다고 여겨졌던 결론이 다른 상황에서는 전혀 정의롭지 못한 결론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어떤 결론이 정의롭다는 주장을 도출하는데 사용한 근거가 과연 그러한 결론을 도출하는데 적합한 근거인가를 고민하게 해 주었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판단의 문제에 보다 정의로운 판단을 위해 심각한 고찰이 필요함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얼마 전 상영된 베테랑이란 영화에서 ‘서도철’ 형사의 인기는 대단했었다. 어쩌면 재벌3세 ‘조태오’ 역을 맡았던 유아인의 악명 높은(notorious) 연기가 일조한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정의롭지 못한 속살을 그대로 투영한 현실의 자화상과 이것이 가상의 공간에서만이라도 정의라는 칼날로 교정되는 순간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

비록 영화 속 주인공이지만 부패한 사회를 향해 종횡무진 칼을 휘두르는 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칠 수 있었던 건 외압에 굽히지 않고 권력자의 비리를 파헤치려고 좌충우돌하는 서도철 형사의 정의로움이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리라.

그래야 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모름지기 경찰은 누구보다 그러해야 하는 사람으로 이 사회의 정의를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부여한 특권이자 의무이기도 함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들만이라도 정의의 본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대리만족 혹은 공감의식이었을 게다.

넓게는 국가기관이 경찰, 검찰 등의 기관을 두고 있고, 금융 혹은 공공기관이라는 작은 울타리에서는 금융감독원, 감사원 등의 기관이 있어 일종의 특권과 의무를 부여하며 나름 정의를 위한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보강하고 있다. 더 작게는 웬만한 외형을 갖춘 기업이라면 감사 및 감사실을 둬 직원의 부정 및 대표이사의 대리인문제를 보완하고 주주이익이 침해되는 것을 견제하고 있다. 이 모두가 정의구현의 작은 축소판이라 해도 무리는 아닐지 싶다. 어쩌면 우리의 양심의 무게를 더욱 조여주는 조직의 중요한 일부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경찰을 비롯해서 감사원, 감사실 이라고 하면 누구나가 은연 중에 거부감이 있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직원 누구나가 업무의 과정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업무상의 과실이나 본인도 모르는 부적절했을지 모를 위법한 일상에서 오는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그 이유일 것이고, 당시 일처리 과정에서 그렇게 판단할 수 밖에 없었을 사정과 형편 및 당시의 정황을 수사과정에서 잘 이해 못하리라는 오해도 한 몫 있으리라 생각한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는 생각으로 현장으로 달려가는 서도철 형사의 모습처럼 현장으로 회심하는 자세로 현장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모습과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소통해 나갈 때 비로소 오해는 이해의 시각으로 바뀔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것이 가장 정의로운 판단인가와 그러한 판단에 사용할 적합한 근거에 대한 고민은 지금도 다른 상황 가운데 계속되지만, 우리에게 솔로몬의 혜안에 아직도 턱없이 못 미치고 있음은 보다 오해의 간극을 줄이려는 이해의 부족 때문이리라. 영화 속 서도철 형사에게 박수치는 관객들과 정의에 목마른 갈급한 독자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어쩌면 불의와 적절히 타협하면서 정의로움을 꿈꾸는 이 시대 범부로 만족하겠는가? 우리 안의 정의는 충분한 합리적 근거를 통해 뒷받침되고 있는지? 정의에 대한 프레임에 물음표를 찍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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