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명소를 찾아서

장맛비가 내리는 가 싶더니 뜨거운 태양이 내리쬔다. 그러다가 다시 비구름이 몰려오고...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 지 혼란스러운 시기다. 고향처럼 편안하고 푸근한 곳이 절로 생각난다. 오래전 추억 가득한 고향 같은 곳 ‘빛고을 명소’를 본면에 시리즈로 소개한다.<편집자 주>

<1913송정역시장>

전통과 새로움이 공존…‘젊음의 장소’로 재탄생

100년 역사 자랑…낡고 허름한 시설로 오랜 기간 외면받아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에 청년상인들 참여 생기 불어넣어

점포마다 기발한 아이디어 가득…먹거리·즐길거리 넘쳐

하루 방문객 1천명으로 ‘껑충’…물품보관실 등 편의시설도

 

1913년부터 광주 송정역과 함께 100년 역사의 명맥을 이어온 송정매일시장이 지난 4월 ‘1913 송정역시장’으로 재탄생해 광주의 새로운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남성진 기자 nam@namdonews.com
‘밀밭양조장’에서는 여름철 더위를 날려버릴 시원한 수제 맥주도 맛 볼 수 있다. /남성진 기자 nam@namdonews.com
1913송정역시장의 명물로 자리잡은 ‘또와식빵’은 식빵을 먹기 위한 사람들로 긴줄이 늘어서 있었다. /남성진 기자 nam@namdonews.com
‘역서사소’에는 전라도 사투리를 모티브로 만든 엽서와 ‘겁나’ 노트 등 여러 아이디어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남성진 기자 nam@namdonews.com
전 세계 봉지라면을 만날 수 있는 ‘한끼라면’ 식당. /남성진 기자 nam@namdonews.com

지난 16일 오후 7시 찾은 광주 광산구 송정동 1913송정역 시장. 지난해 이 시간대면 이미 문을 닫고 어둠이 내려 앉았을 송정역시장은 이날 노란 조명이 하나 둘 켜지며 금새 젊은이들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해졌다. 오전까지 많은 비가 내려 방문객이 많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새롭게 변신한 송정역시장의 맛과 멋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20대 청춘들과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많은 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1913송정역시장’은 최근 광주의 핫 플레이스다. 젊은이들 사이에 소문을 타면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SNS에는 1913송정역시장 에서 찍은 인증 샷이 하루에도 수시로 올라온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913송정역시장’은 시장의 기능을 잃어버린 시장이었다. 벽에는 금이 가고 허름한 2, 3층 건물에 점포 3곳 중 1곳이 비어 있을 정도로 낡아 있었다. 역세권이면서도 오래되다 보니 악취와 비가 오면 질척거리는 바닥과 의욕을 잃은 상인들로 ‘소비자가 외면하기 좋은 조건’의 시장이었다.

이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 벌써 1년이 넘었다. 인테리어와 간판은 전통을 최대한 살리면서 현대적으로 디자인해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분위기로 바꿨다. 시장의 답답한 아케이드 대신, 노란색 망사 차양막과 조명전구를 달아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고 밝은 분위기를 연출한 것은 여느 시장과 대비되는 요소다.

송정역 시장의 성공을 압축한다면 ‘바꾸기 위한 변화가 아닌 지키기 위한 변화’로 귀결된다.

옛 것을 살리자는 취지로 ‘매일송정역전시장’이던 이름은 1913년 처음 문을 연 시장의 103년 역사를 강조하기 위해 ‘1913송정역시장’으로 바꾸고, 건물 개·보수와 리모델링은 최소화하면서 시장을 문화적 명품으로 만들었다.

특히 기존상인에 젊은 상인의 융합은 새로운 시너지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비어 있던 17개 점포에 모객(募客) 효과가 높은 음식점을 한정한 20~30대 청년상인들을 참여시키면서 활력을 찾았다.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현대카드의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가 뒷받침됐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청년 17명이 빈 가게에 입주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청년들은 독특하고 맛있는 먹거리와 눈에 띄는 디자인으로 시장을 바꿨다.

청년들이 기존 상인들과 신구 조화를 이뤄내며 융합을 통한 새로운 시장 문화를 만들자 ‘매일역전시장’은 지난 4월 18일 ‘1913송정역시장’이란 이름으로 재개장 했다. 재개장 이후 시장은 하루 평균 방문객이 200명에서 1천 명으로 늘었다.

송정역시장의 매력은 전통과 역사를 살리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오래된 점포들은 개성을 살리고자 건물 외형과 멋을 그대로 유지한 채 깔끔하게 리모델링 돼있다. 각 점포 앞바닥에는 건물 건립 연도를 표시한 연도석을 새겨 놓았다. ‘라의상실’ 진열대에는 ‘옷을 짓고 만드는 일에 정통한 40년 경력의 재단사 부부가 함께 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시장하면 떠오르는 서민음식 ‘영명국밥’집은 ‘30년 넘게 식재료를 판매한 시부모님에게 좋은 재료 고르는 법을 배웠다’는 비법을 공개하고 있다.

청년들 가게는 하나같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로 가득하다.

1913송정역시장의 명물로 자리잡은 ‘또와식빵’은 그 유명세 만큼이나 초콜릿과 식빵의 조화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항상 긴줄이 늘어서 있을 정도여서 1인당 2개밖에 팔지 않는다.

‘역서사소’는 전라도 사투리를 모티브로 만든 엽서와 ‘겁나’ 노트 등 여러 아이디어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누구나 가게’는 간편한 이름처럼 하루부터 일주일까지 누구나 임대해 사용 가능한 점포이다.

분식 ‘계란밥’을 비롯 어묵집 ‘어? 묵!’, 세계봉지라면 ‘한끼라면’, 독일식 음식집 ‘독일식 족발&쏘시지’ 등 다른 청년 가게들도 창의력이 넘친다.

방문객들 틈에 섞여 시장의 자랑거리인 각종 음식들을 맛 보았다. 전을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역전’의 감자전과 함께 막걸리로 목을 축인 뒤 디저트로‘갱소년’의 상큼한 과일 맛의 양갱꼬치를 맛 본 순간 한 주의 스트레스가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밀밭양조장’에서는 여름철 더위를 날려버릴 시원한 수제 맥주도 맛 볼 수 있다.

송정역시장은 방문객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잘 갖춰진 편이다. 시장 중앙에는 쉼터도 마련돼 있다. KTX 광주 송정역 이용객을 배려한 열차시간 전광판과 물품보관함도 설치돼 ‘제2의 대합실’ 역할을 톡톡히 한다.

송정역시장을 방문하려면 가급적이면 평일 오후 5시 이후에 가는 게 좋다. 더 많은 볼거리와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매월 둘째 주 월요일은 피해야 한다. 정기 휴무일이다. 매월 넷째 주 월요일은 자유 휴무일이다. /임소연 기자 lsy@namdonews.com /정종욱 기자 jj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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