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동구 일본총영사관 정문 앞에 설치됐다가 관할 구청에 철거·압류된 '평화의 소녀상'이 30일 영사관 앞에 다시 설치돼 있다. 동구청은 지난 28일 소녀상을 강제로 철거했다가 심한 비난을 받게되자 이날 소녀상을 부산시민단체에 반환하고 영사관 앞 설치를 전격 허용했다.

서울의 주한 일본대사관에 이어 부산의 주한 일본영사관 앞에까지 '소녀상'이 설치되면서 일본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외교당국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5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 2014년 4월에 위안부 문제 협의를 위한 국장급 협의를 시작할 때부터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의 이전을 요구했고,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져 결국 12·28 위안부 합의에 '소녀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우려를 인지하고,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당초 일본 정부는 소녀상 문제 해결에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의 국민적 감정을 감안해 일본이 한 발 물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합의 후 일본 측은 사실상 소녀상의 철거를 약속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갈등을 야기했다.

일본이 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에 이처럼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장소적 상징성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국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장소인 대사관 바로 앞에 위안부 문제를 고발하는 소녀상이 설치됨으로써 부끄러움과 동시에 치욕스러움까지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12·28 위안부 합의 후 일본 측에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추진한 사안이라, 정부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부산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서는 "외교공관 보호와 관련된 국제예양 및 관행이라는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이를 놓고 소녀상 설치 문제가 해당 지자체의 판단 영역이기는 하지만, 외교부가 부정적 입장을 내놓은 것이 사실상 압력을 행사한 거라는 문제 제기도 없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정부 한 관계자는 "주재국 정부는 기본적으로 파견국 공관과 호혜적 관계를 맺는 게 관례"라며 "일본 당국이 주일 한국대사관 등 한국의 재외공관 앞에서 혐한(嫌韓)시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이러한 관례에 바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 상황에서 영사관 앞에까지 소녀상이 설치되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일각에서는 양국 간 통화스와프 협상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적으로 봤을 때 시민단체에 의해 적법성의 여부와 무관하게 설치됐음에도, 여론에 의해 공공조형물로 등록하는 방안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외교적 관례를 앞세워 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관측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박근혜정부가 협상을 어설프게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재협상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로서는 외교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관리해 나가는 게 현재로써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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