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광주교도소 주둔
3공수여단 부대원들
암매장 상황 털어놔
재소자도 “시신 묻어”


3공수여단 본대대장으로 근무했던 김 모 소령은 “80년 5월 23일 오후 6시부터 약 2시간에 걸쳐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3명을 포함한 12구의 시체를 매장한 사실이 있다” “관을 사용하지 않고 가마니로 시신 2구씩 덮고 묻었다” “교도소 담장에서 3미터 정도 이경해 매장했다” 고 밝히며 기념재단측에 약도와 현장을 확인해줬다.
15대대 부사관 김 모씨는 “5월 22일 새벽 전남대에 연행됐던 시민 120명을 광주교도소로 이송, 고속도로 방향으로 조준사격해 전복된 차량의 시신을 수습하고 하루 정도 방치했다 냄새가 나 시신 5~7구를 가매장했다”고 암매장 사실을 증언했다. 또 “신분증을 가지고 있는 시신은 나중에 신원확인을 위해 가슴위에 올려놨다”고 덧붙였다.
11대대 소속 이 모씨는 8명을 직접 묻었다고 증언했다. 11대대가 주둔했던 교도소 남쪽은 계엄군이 철수한 이후 1980년 5월 30일 8구의 시신이 수습됐던 곳이다.
기념재단은 당시 재소자의 증언도 공개했다. 당시 광주교도소에 수용됐던 최모씨는 “일반 수인들은 오후 5시면 모두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모범수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비교적 자유로웠다. 어느날 교도소 담장 밖에서 포크레인이 작업하는 것을 보았다. 2군데 지역이었는데 움푹 들어간 계곡처럼 내려오는 곳이었다. 당시 모범수 사이에서는 시신을 묻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최씨가 증언한 작업 현장은 김 소령이 ‘시신 12구를 묻었다’고 검찰에 진술한 장소와 일치한다.
이와관련 양희승 5·18구속부상자 회장은 “제보자들의 이같은 증언은 80년 당시 제3공수가 각 대대별로 암매장을 자행했다는 것을 말해준다”며 “제보자 3명의 증언이 일치하는 만큼 이번 발굴조사에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옛 광주교도소는 5·18 당시 3공수여단과 20사단 병력들이 주둔했다. 1980년 5월 직후 교도소 관사 뒤에서는 시신 8구, 교도소 앞 야산에서는 시신 3구가 암매장 상태로 발견됐다.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80년 5월31일 ‘광주사태 진상 조사’ 문건에는 이른바 ‘교도소 습격 사건’으로 민간인 27명(보안대 자료 28명)이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다.
/정희윤 기자 star@namdo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