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29>-제3장 의주로 가는 길

“우리 고을에 오래전에 장군이 한분 계셨다. 나는 그를 흠모했다. 그래서 얼마전엔 대마도도 다녀왔다. 그의 세계관이 완성되었더라면 이런 개 같은 세상이 오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개 같은 세상이이라뇨?”

“너는 잘 모를 것이다.”

“그러니까 가르쳐 주셔야지요. 어느 장군을 말씀하십니까?”

“지 장군이다.”

“지 장군?”

“정 지라는 장군이시다.”

바로 충신의 9대조 할아버지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충신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전율이 왔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자신의 할아버지를 치켜세우다니. 그는 길삼봉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분의 선견지명을 따랐다면 우리가 이런 모욕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귀양살이 끝에 비참하게 가대가 몰락하여서 그 어른의 치적이 감추어져서 그렇지, 여말선초(麗末鮮初), 그분의 이상을 따랐다면 우린 지금 왜로부터 조공을 받고 사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조공을 받고 산다고요?”

“그렇지. 역사란 선반에 올려진 문서궤짝이 아니다. 그래서 재해석하고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란 낡은 고리짝의 문서쪼가리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살아가는 진정한 삶의 지표로 삼는 나침판이라는 것이다. 지 장군 얘기를 들으면 나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너무 아쉬워서 분통을 터뜨린 때도 있다. 그의 길은 옳았다.”

충신은 아버지로부터 지 할아버지의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상세한 얘기를 하려 하지 않아 늘 채워지지 않는 무엇 때문에 아쉬움이 있었다.

“금성 성님, 그분은 저의 9대조 할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도 가대의 영광을 몰라?”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럴 것이다. 태조 임금을 도왔으나 추후 지향하는 길이 달랐으니 역모로 몰렸고, 후손들이 핍박을 받으며 숨죽이며 살았을 테니까 말이다. 지 장군은 태조 임금을 추종하는 세력들에게 역모로 몰려서 모진 고문과 투옥생활을 거듭한 끝에 병사하셨다. 역사는 늘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 씌어졌고, 진실은 묻혔다.”

충신은 아버지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감춘 것의 내막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직도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조선왕조 아닌가.

“할아버지가 꿈꾼 이상이 무엇인가요.”

“잘 들어라. 할아버지는 왜구 격퇴를 위해 일생을 바친 수군사령관이시다. 왜구가 쳐들어오는 전초기지가 대마도인데, 이 땅을 우리 땅으로 확실하게 명토 박고, 항차 우리의 해양진출의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고 주창하셨지. 그곳은 명나라로 가는 길목이고, 북방을 치러 가는 해상교통로이며,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초입이다. 우리의 중요한 군사요충지이자 우리 꿈을 세계로 펼쳐나가는 관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조정신료들은 그 땅은 곡식도 제대로 재배되지 않는 척박한 섬인데 우리 것으로 만들어서 뭐하냐고 묵살했지. 그곳 섬사람 먹여 살리느라 국고를 축낸다고 반대했던 것이다. 노략질하는 그들을 콩 이백석, 쌀 이백섬 따위로 달래면서 그작저작 살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지 장군은 대마도의 중요성을 아셨다.”

정충신은 침을 꿀꺽 삼키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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