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67>-제5장 정충신의 지략

박대출이 응수했다.

“옳은 말이네. 수천 마디의 말이 아니라 단 한 자루의 삽이 산을 움직인다 이 말이제? 고상한 말이시. 알아묵었네. 한디 자네가 내 신원보증을 선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가 이대로 나가면 포졸들한티 체포되어서 한양으로 압송될지 모릉개 자네가 나 신원보증 단단히 서야만 써. 그놈들은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자들인지라 책임있는 보증이 필요하다마시. 날 뭘로 보증할 것인가?”

“이것으로 보증할 게요.”

정충신은 안주머니에서 조그만 숟가락 대가리만한 패를 끄집어내 그에게 내밀었다. 못믿어워하는 그를 안심시키는 것으로는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한 충효행 패올시다. 마패는 아니지만, 이것이 나를 지탱해준 힘이었지요.”

대장장이가 놀라는 눈으로 정충신을 바라보았다.

“엄청난 팰세. 실로 우러를 만하고만. 나는 이런 패를 만들 줄은 알제만, 타본 적은 애당초 없어서 위조해서 하나 차고 다닐라고도 했제. 상놈의 탈을 벗을라면 이런 것도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당개. 사대부 새끼들은 매관매직으로 관직 하나씩 차고 행세하는데 나라고 못할 이유가 뭐가 있간디? 상놈의 새끼들이 누구냐고? 그래서 정 장군 모시고 엎어버릴라고 했던 것이었어.”

“성님께 엄숙히 수여하는 패요. 그러니 성님이 효자요. 이것이 나고, 또 이것이면 다 통할 것이요.”

“고맙네, 고마워.”

그가 패를 받아 숯검정이 얼룩져 시커먼 고의적삼 안주머니에 보물처럼 소중하게 집어넣었다.

“성님, 웅치 쪽에서 1차 붙을 때까정 움직이지 말고 청년들을 규합해주시오. 잡병 수준이라도 써먹을 수가 있소. 수가 많을수록 좋아요. 웅치 쪽에서 왜군이 공격하면 황박, 변응정 군이 그들 힘을 뺄 것이요. 그 뒤에서는 고경명 의병군이 부술 거고요. 그렇게 힘을 빼면 우리한티 덤벼들 적에는 왜군놈들 지쳐있을 것이요. 고때 조사버립시다. 그때를 노려서 가차없이 아작을 내면 저놈들 시체가 산을 이룰 것잉마요.”

“그러면 시체 치울 일이 힘들겠고마잉. 산 놈은 정신없이 도망갈 것이고... 좌우지간 고새끼들 잘근잘근 씹어먹든지 사정없이 조사뿔세. 이건 자네 생각인가, 도절제사 생각인가.”

“이건 절제사 생각이고, 내 생각이고, 부전장 생각이기도 하요.”

“담력 큰 위인일세. 나가 사실은 세상에 원한도 많고 할 말도 많은디 동상 앞에 서니 얼음이 되어버리네야. 자네 명령대로 나는 싸울 것이네. 단연코 우리 땅을 지켜야제.”

“고맙습니다. 성님 얘기는 나중 몇날 며칠을 두고 들을 것잉개, 지금은 서두릅시다. 내 지시를 잘 따라야 합니다.”

“나는 자네 말을 순순히 따르는 어린 양이여. 나가 동상만 같어. 나이가 벼슬이 아니란 말을 실감했네야. 자네는 참으로 비상한 능력을 가졌어. 처음엔 어린 놈이라고 시피봤디말로 갈수록 용맹한 지휘자여. 자네한티 내 인생 걸어도 되겄는가.”

정충신이 박대출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답했다.

“아먼요. 함께 가야지요. 한디 성님, 전투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그야 당연히 무기 아니겄는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무기를 쓰는 병사들이 잘 먹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사기만 가지고 싸울 수는 없승개요.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 적이 보이지 않겠습니까이. 그래서 취사반이 필요한디 우리 부대는 급조해서 편성한 부대라 취사반이 별도로 편성되지 않았단 말입니다. 밥은 물론이고 반찬을 맛나게 만들어 제공해야 합니다. 잘 먹으면 그 뱃심으로 잘 싸울 것잉개요.”

“부녀자 지원이 필요하다 그 말이제? 그쪽은 걱정안해도 될 성불러. 나가 동네 아짐씨들 혼을 빼놓고 있거든. 호미를 그냥 공짜로 만들어중개 호미 때미 그런지는 모르지만 다들 나를 좋아하더만. 부상병을 위해서는 여자 간호부들이 필요할 것잉마. 선죽도에서 겪어봤는디, 부상당한 군졸을 버리지 않고 델꼬 와서 현지 아짐씨들을 동원해 성심껏 치료항개 병사들이 눈물 죽죽 흘리면서 고마워하더군. 집에서도 이런 대접받지 못했는디 정 장군 휘하에서 사람 대접받았다고 미쳐버리더랑개. 그러니 사기가 충천했제. 어떤 누구도 허투루 하지않는다는 통솔력 땀시 그 힘으로 왜 수군들을 아작내부렀지.”

“지금 왜군 놈들이 주둔지 식량확보로 지금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고것을 차단해불면 고자들 사기가 뚝 떨어질 것잉마요. 굶주림을 견디는 병사는 없승개요. 그러니 그놈들은 어떻게든 굶겨야 이곳을 떠나게 돼있습니다.”

“그러면 저놈들 식량창고부텀 불을 내야겠고만.”

“그것도 병법에 나와있지요. 마을로 내려갑시다. 지원병을 받고, 취사아줌씨 간호부아줌씨도 구해야 항개요.”“동상은 과연 생각이 깊은 인간이여. 동상한티 비하면 나는 포도시 걸음마를 뗀 아기같단 마시.”

그가 존경스럽다는 듯 정충신을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정충신은 그에게 다가가 그의 두 손을 잡아주었다. 어깨가 딱 벌어지고, 송아지 머리통만한 주먹이 단단해서 힘깨나 쓴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숲속으로 들어가 인근 마을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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