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73>-제6장 불타는 전투

전주성과 김제만경 평야를 점령하지 못하면 지는 전쟁이다. 수만 병력의 병사들 식량보급이 용이하지 못하고, 병사들에게 제대로 먹이지 못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 반드시 병참선과 군량미를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니 물러설 수가 없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가장 신임받고, 그래서 영광스럽게도 전라도 진격명령을 부여받았지 않았는가.

전주성을 함락시키지 않으면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다이묘의 명예에 먹칠을 한다. 그리고 전라도 공략은 고바야카와의 은퇴전이나 다름이 없었다. 전선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무훈을 마무리하는 회갑잔치가 되는 것인데, 돌아가는 상황이 영 마뜩치 않은 것이다. 그는 잘못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감으로 한동안 절망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이럴수록 분기탱천해야 한다고 자신을 독려했다.

고바야카와가 부관에게 명령했다.

“최전방에 포진한 1중대와 2중대는 즉각 전투대형을 갖추라. 본전에 대비해 부대편성을 다시 한다. 기갑부대도 편성한다. 경사면을 넘을 때 기계화부대의 지원을 받는다.”

그는 전라도 진격을 위해서 특별히 기갑부대도 편성했다. 화력의 증대를 꾀하기 위해 화포를 이용해 진격과 이동속도를 최대한 확보하고자 특별히 편성한 부대였다.

“총포부대는 사격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철저히 총포 점검을 하라. 기름칠을 한 뒤 총검술도 완벽하게 실시하라. 군마부대는 절벽에선 무용지물이니, 화포운반에만 사용하라. 모두 각자의 부서로 돌아가 공격전에 대비하라.”

수행하던 부관과 참모장이 각지게 거수경례를 붙이고 물러났다. 밤이 깊을수록 산꼭대기마다 봉화가 더욱 뚜렷하게 타오르며 그의 눈앞을 어지럽혔다. 전주성 방향 산과 남쪽 산능선에선 불꽃 수십 개와 함께 요란한 함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진산 북쪽에서도 봉화가 오르고 있었는데, 거기엔 고경명 의병사단이 진을 치고 있다는 첩보 보고였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농악소리가 들려오는데 그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흡사 깊은 동굴에 갇힌 동물의 신세가 된 기분이었다.

농악은 기본이 되는 열두 거리. 한 채에 세 가락씩 모아있고, 그것이 서른여섯 가락으로 이루어져 울려퍼지고 있는데, 그것은 비수처럼 그의 가슴에 와박혔다. 왠지 모르게 농악소리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전라도를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쉽게 보았는데,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인가. 이것이 무엇이냐.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냐. 암사슴을 잡고, 암사슴의 새끼를 삶아먹은 것이 동티가 난 것인가.

그는 백발의 머리털을 쥐어뜯고 싶었다.

“웅치에서 붙었다 하구마요.”

다음날, 전령을 통해 보고받은 첩보사항을 가지고 정충신이 권율의 막영지를 찾았다. 권율은 상쾌한 기분으로 정충신을 맞았다.

“간밤에 행한 전술은 십만 보병전보다 효과가 있다. 연막전은 어떤 강군의 깃발보다 좋은 효과가 있었다고 판단하는 바이다. 연막의 기세로 적의 의기를 누를 수 있으니 가장 경제적인 전술이구나.”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어제 안심골에서 부순 왜병은 고바야카와 제1대 부대원 중에서도 정예라고 한다. 그것들을 부쉈으니 대단한 전과다. 그러나 보복이 따를 것이니 각 마을 경계도 소홀히 해선 안된다. 황진 의병대장 휘하의 병사들을 보초 서게 했으니 정사령은 그때그때 중간점검하고, 첩보사항을 꾸준히 수집하라.”

“이미 마을 사람들을 소개시켰습니다. 봉화불 올리고, 연기를 올리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박대출 사령의 동무들도 산으로 들어왔습니다.”

“산골에선 선무작업이 중요하다. 나는 본시 칭찬에 인색하지만 이번 건은 정충신 척후사령이 한 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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