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김은 갔지만 호남을 대표하는 포스트 DJ는 없다

박준일의 세상읽기

3김은 갔지만 호남을 대표하는 포스트 DJ는 없다

<박준일 남도일보 대기자>
 

영욕의 정치인 김종필(JP) 전 총리가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면서 김대중, 김영삼과 함께한 이른바 3김시대가 역사 속으로 퇴장하게 되었다. 고인이 된 JP에 대해 5·16 쿠데타의 주역이자 1965년 한일협정을 이끌었다는 부정적 평가에 불구하고 그는 1997년 대선에서 선거 막바지에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도왔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5선의 박찬종 전 국회의원도 “과오만 집대성하면 살아남을 사람이 누가 있는가?”라고 꼬집었다.

JP는 호남 출신이라는 천형과도 같았던 멍에를 안고 살면서 지역감정의 벽에 가로막혀 번번이 좌절해야 했던 호남사람들의 한을 풀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박정희 정권 18년을 포함, TK정권을 포함하면 무려 37년이라는 장기집권에 종지부를 찍고 야당 대선후보인 호남 출신 김대중으로 정권 교체가 가능하게 했다.

호남차별이 극심했던 80∼90년대 “출생지는 서울이지만 부모의 고향이 호남이라는 소문이 있음”이라는 사찰 기록의 한 대목은 지역 차별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돌이켜 보면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은 호남과 영남, 충청을 지지기반으로 대한민국 정치계를 풍미했다.

3김이 떠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진정한 지역주의 타파에 나서야 하겠지만 DJ 이후 호남에서 대안이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점은 가슴 아픈 일이다.

2015년 11월 YS 서거 후 이상돈 당시 중앙대 명예교수는 DJ와 YS 같은 ‘큰 정치인’은 앞으로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교수는 “두 사람은 넬슨 만델라나 아웅산 수지와 비교되는 지도자”라면서 “그런 대단한 리더십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지난 국회의원 총선 때는 안철수에 열광하고 대선 때는 문재인에 열광한 것 아닌가. 호남 인재의 빈곤이다. 활동 중인 중량감 있는 호남 정치인으로 정세균, 박지원, 박주선, 정동영, 천정배, 송영길, 이낙연, 이용섭, 임종석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호남을 대표하는 차기 대선주자로 이름을 올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일부 인물은 흘러간 유행가 같은 너무 때 묻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지울 수 없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한 언론사의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조사에서 박원순, 김경수, 김부겸, 이재명 등과 함께 호남 출신인 이낙연 총리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포스트 문재인으로 이낙연, 임종석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이 두 사람 역시 호남을 대표할 정도의 정치적 식견은 검증되지 않았다.

특히 이낙연은 지난 대선 이후 호남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총리로 발탁되었으나 지역 정가에서는 정작 실세 총리나 책임총리로서의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이 총리가 6·25전쟁 기념식에 참석해 “장사정포의 후방이전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 발언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JP의 빈소에 조문할 것으로 보인다”는 발언은 모두 몇 시간도 안 돼서 청와대 등에서 번복하는 사례가 그 반증이다.

지난 지방선거 때처럼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에 얹혀가는 정치인이 아닌 자기만의 색깔로 소신껏 말하고 정의로움이 있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을 챙길 줄 아는 따뜻한 정치인의 탄생을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호남을 대표하는 당당한 정치인을 키워야 한다.

그런 정치적 기반에서 지난번 광주·전남 시도지사 경선에 나섰던 후보 군들도 소중한 인적자산으로 키워야 한다. 기초단체장에 진출한 정치인 가운데에서도 참신한 인물이 있다.

또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8·25 전당대회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당권 도전에 7선의 이해찬 의원을 비롯해 4선의 김진표·박영선·설훈·송영길·안민석·최재성 의원 등 20여 명이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가운데 호남은 고흥 출신의 송영길 의원 1명 정도다. 송 의원이 과연 본선에 오를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미래를 말하다’라는 책에서 “역사는 보수주의자보다는 진보주의자에 의해서 발전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인물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호남에서 DJ 이후 저 사람이면 함께 하고 싶다는 그런 정치인이 많아졌으면 한다. 지역인재를 키우자는 것을 지역주의와 혼돈하거나 왜곡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호남을 대표하는 수준의 정치인을 키우는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집권당을 이끌고 나아가 나라를 대표하고 남북을 하나로 묶는 평화와 통합의 리더십을 가진 DJ 같은 정치인을 키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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