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일의 세상읽기

어쩌다 특종…기자는 기사로 말한다

국내 재계순위 6위인 GS그룹 산하 GS칼텍스 여수공장이 지난 27년 동안 특정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는데도 국가기관 어느 곳으로 부터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으면서 관련 중소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제보가 있었다. GS칼텍스의 일감 몰아주기는 거의 모든 언론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즉 특종도, 단독보도도 아니었다. 언론이 이런 불법관행을 알면서도 일상처럼 받아들여 보도하지 않았거나 적극적 취재 의지를 드러내지 않은 상태에서 27년 동안이나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 기름을 가득 실은 대형 유조선 1척을 GS칼텍스 부두에 예인하기 위해서는 6척의 예인선이 필요 하는데 6척 모두 특정업체 선박만 이용한다는 것이다. 예인선 한 척당 비용은 5백만 원에서 7백만 원씩을 받는다고 하니 유조선 1척이 들어오면 3천만 원에서 4천만 원의 예인선 비용이 발생한다. 하루 평균 대형 유조선 2척이 드나드는 것을 감안하면 많게는 8천만 원 정도를 매일 특정업체에 밀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10개 중소업체의 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계기로 남도일보는 1보 “GS칼텍스 특정업체에 예인선 일감 몰아주고 있다”를 시작으로 2보 GS칼텍스, 특정업체 일감 몰아주기 27년…‘특수관계’ 의혹 3보 GS칼텍스, 일감 몰아준 남해선박과 특수관계 맞다 4보 GS칼텍스 수사착수, 해양경찰청 본청이 나선 까닭은 5보 GS칼텍스, 공정거래위원회 ‘칼날’ 피해갈 수 있나 6보 ‘백기’ 든 GS칼텍스…27년간 일감 몰아주기 개선 잠정합의 7보 여수·광양항만 예인선 비대위-GS칼텍스 상생방안 최종합의 8보 GS칼텍스의 27년 일감 몰아주기는 개선됐지만… 등 8회에 걸쳐 집중 보도했다.

보도는 주요 포털에 당일 오후 8시를 전후에 게재하고 다음날 남도일보 지면에 반영하는 형식으로 기사화했다. 지역사회에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거대기업 GS칼텍스가 이를 개선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7월 중순 공론화된 GS칼텍스의 일감 몰아주기 보도는 전남 노컷뉴스를 제외한 지역언론들이 거의 다루지 않았고 통신과 지역 공중파가 최초 기자회견과 협상타결 소식 중심으로 단신 또는 스트레이트 보도하는데 그치면서 자연스럽게 남도일보의 보도와 크게 대별되어 단독 또는 특종보도처럼 비쳐진 것이다. 물론 GS가 대형 광고주 중 한 곳이라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는 없다.

취재 초기 GS칼텍스 측은 “선사가 해운대리점을 통해 사용하는 예인선 선정은 선주와 대리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화주인 GS칼텍스는 관여하지 않고 남해선박과도 특수관계 등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고 일관되게 부인했다. 특히 국가 감독기관인 여수지방해양수산청도 “여수·광양항이 자유계약제 항만이어서 임의대로 예인선업체와 계약할 수 있기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따라 취재팀은 신용평가 전문기관인 한국기업데이터의 ‘기업신용분석보고서’와 나이스평가정보의 ‘상세기업정보’, 법원 등기부등본 등을 정밀 분석해 남해선박 대표이사와 최대주주를 비롯해 주주 모두가 GS 관련회사에서 퇴직한 간부들인 사실을 추적 보도했다.

해양경찰청 본청은 남도일보의 연속 보도가 사회적 여론을 환기 시키면서 GS칼텍스와 남해선박 간의 특수관계 여부와 일감 몰아주기의 불법관행, 그리고 비자금 조성창구 의혹 등 전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번 보도가 불법 관행에 종지부를 찍게 함으로써 예인선 중소업체들과 대기업이 상생 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특히 도산 위기에 몰렸던 중소 예인선 업체들이 정상 운영에 들어가 지역발전에 한 몫을 하게 됐다. 지방권력과 기업, 토호세력 등에 대한 언론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일깨운 계기가 되었으며 남도일보 동부취재본부의 팀워크로 만들어 낸 첫 산물이기도 하다.

특히 남도일보 맨 뒤 지면인 20면을 1면과 제호부터 똑같이 제작함으로써 1면이 2개와 같은 효과를 주는 지역신문의 새로운 제작형태도 독자들의 관심을 촉발시켰다. 취재와 보도과정에서 언론윤리 강령기준을 준수했다. 이번 보도에 대한 관계회사의 반론보도 및 언론 중재요청은 없었다. 앞으로도 언론본연의 사명과 약자들을 위한 진실 찾기는 계속 될 것이다.

사실 이 땅에 많은 언론이 있다. 1988년 언론자유화 조치 이후 올해로 30년이 되면서 언론의 자율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광주전남지역에도 지방신문과 인터넷 언론이 홍수를 이루면서 이제는 기자들 스스로 포화상태라는데 동의한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출입하겠다고 등록한 기자들이 많다. 단적으로 순천시에 출입을 등록한 기자가 180명이라고 한다. 이러다 보니 출입처에서는 기자를 보는 냉소주의가 있다. 그렇다면 많은 언론이 각급기관을 비롯해 지역사회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답하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남도일보는 지난 6월초부터 본사 소속 기자들로 전남 동부권 취재본부를 출범하고 현지 주재기자들과 함께 협업 취재활동을 시작했다. 많은 기자들 가운데 숟가락을 몇 개 더 얹은 모양새가 됐다. 동부취재본부는 필자부터 구성원 모두가 외인부대처럼 외부에서 수혈됐다. 여러 시선이 교차했다. 겨우 출범 두 달이 지났지만 처음처럼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는 원칙을 지키려 한다./남도일보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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