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복원’만이 5·18정신 계승인가?

정숙경/사회복지법인 효천재단 사회복지연구원장

지난 달 설훈 최고위원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민주평화교류원 1층 ‘도청복원’농성현장에서 만났다. 조윤선 전 장관의 채용비리로 되지 못했지만, 2013년 여성가족부 ‘개방형 고위공무원’ 최종 면접 당시 단지 고려대 민주동우회 후배라는 이유로 조언을 주셨던 고마움 때문에 뵙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설 최고위원이 5·18 유공자이고, 당시 받았던 1억 5천만원의 보상금을 담양 한빛학교설립에 기부하셨다는 사연에 놀랐다. 장기농성에 힘들다고 하니 지갑을 털어 124만원을 쾌척하시고 가는데 감동적이고 후배로서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농성은 5·18 당시 구 도청이 시민군의 최후항쟁지이므로, 5·18정신의 계승을 위해 도청을 복원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원형복원이 실제 가능하며, 도청복원만이 5·18정신의 계승인가 하는 점이다. 2003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건립 당시 도청을 유지하고자 지하 형태로 건립되었는데, 다시 도청복원을 위해 민주평화교류원을 점거하여 2년째 농성 중이다.

그로 인해 110억원의 손해배상이 제기되었고, 정부가 우선 보상하고 시민단체의 중재로 법적 보상은 미루어진 상태다. 최근에는 도청복원을 위한 연구용역(2억원)을 조선대학교 민주화운동연구원에서 받아 수행 중이며 연구책임자가 5·18유공자라 한다.

연구용역 결과, 도청을 원형으로 복원해야 한다면, 다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훼손해야 하는가? 건립할 당시 국정과제 특별위원으로서 계획을 검토하면서 아시아문화의 가치인지, 5·18의 가치인지를 분명히 하도록 했는데, 두 마리 토끼로 어느 하나로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두 마리 토끼 때문에 10년이 넘어서야 건립이 완공되었는데, 다시 도청복원의 문제다. 그러니 ‘문화수도’에 담았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바램을 생각하게 되고, 설훈 최고위원을 생각한다.

5·18정신 계승이 무엇인가? 199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5월 정신을 기념해 왔고, 그 전에도 광주의 망월동이나 도청 앞 광장에서 5월 정신을 기념하고 넋을 위로해 왔다. 왜 꼭 도청복원만이 5·18 정신의 계승인가? 5월 대동제에 5·18 광장을 중심으로 5월 정신을 기리지 않는가!

도청이 아니라 광주시민이 5월 정신을 지키고 기념해 오지 않았는가? 5천만원 전세 살면서도 1억 5천만원 보상금을 그냥 기부한 것은 저항이었기에 보상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5·18의 역사적인 항쟁지는 도청이 아니라 도청 앞 광장과 금남로가 아닌가! 그러므로 현재 5·18정신의 계승과 확대를 위해 복원과 역사적인 재생을 해야 한다면 당시 도청과 금남로의 권역을 복원하고 재생해야 하지 않을까?

헬기에 의한 총탄 흔적이 발견된 전일빌딩, 당시 광주경찰서로 무고한 시민과 학생을 잡아 가두고, 위협하며 조사했던 현재의 동부경찰서, 그 뒤로 화염으로 불탄 광주MBC 건물 등을 ‘5·18 역사 권역’으로 재생하여 역사인권문화의 장소로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5·18은 누구의 승리보다는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함께 위로하며 견디었던 광주시민의 주먹밥 정신이 더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니 최후항쟁지라서 도청복원이 5·18정신 계승의 전부처럼 생각하지 말고, 광주시민의 5·18이 5·18유공자의 전유물인 것처럼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시민이 국가인데, 국가의 부당한 권력에 대한 시민적 저항이 어찌 승리의 역사인가! 한국의, 광주시민의 불행하고 아픈 역사이다. 도청광장과 금남로 등을 하나의 역사권역으로 하여 함께 5·18의 역사를 복원하고, 총질 흔적의 전일빌딩, 당시 광주경찰서(현재의 동부경찰서), 당시 화재 났던 광주 MBC 등을 재생하자.

동부경찰서는 1980년 당시 원형 그대로니 아시아문화전당에 도착해 민주평화교류원에서 5·18 기록을 보고 나와 상무관에서 묵념하고, 그 옆으로 전일빌딩이나 5·18광장을 가로질러 오른쪽에 ‘동부경찰서로 가는 길’ 표지판의 숲길을 따라 체포상황 연출로 경찰서로 가게 해 인권과 국가권력에 대해 성찰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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