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됩니다”… 경청과 공감 교육

‘룰루랄라 치치킹킹’10월의 두번째 이야기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됩니다”… 경청과 공감 교육
피임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현실에 눈물 바다

양곤 3일차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을 지지해 줄 수 있는 것을 알게 돼다’

두 번째 세션은 경청과 공감을 기본으로 하는 관계맺기 훈련인 ‘경청과 공감으로 만드는 평화 교육’이었다. 경청과 공감을 커리큘럼에 넣은 이유는 지난 1월에 있었던 설문조사의 결과 때문이었다. IDP캠프에서 활동하는 60여명의 미얀마 활동가들 대상 설문에서 캠프 주민들은 난민 이라는 낙인 때문에 주변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 하고 자주 싸운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기도하는 것 이외에 다른 의지처가 없다보니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중 하나가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경청과 공감 훈련 역시 짧게 ‘노는 시간’을 가진 후 이론 교육 없이 바로 실전 연습으로 시작됐다. 2인 1조를 이뤄 진행자가 제시하는 주제에 따라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짝꿍은 그 이야기를 잘 듣고, 들은 이야기를 다시 다른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듣기보다 말하기를 더 선호하고 상대방의 이야기 도중 말을 자르고 끼어들어 충고하거나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미얀마 활동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 경험하는 ‘잘 듣기’를 어려워했지만 곧 이 훈련의 의미를 이해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이 돼 꺼려했지만 상대방이 진지하게 들어주니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느낌이 받았고 이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지지해 줄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카드를 이용한 공감 훈련 시간

오후에는 카드를 이용한 공감 훈련을 진행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한다는 것 역시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지원활동을 하는 이들에겐 중요한 훈련이었다.

기쁨·슬픔 등 기본 감정부터 용기·정의 등 다양한 감정들을 미얀마어로 번역한 카드를 활용해 공감 카드 활동을 이어갔다. 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카드를 선택한 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경청하던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해주고 싶은 격려나 마음을 표현한 카드를 골라 그에게 건네는 방식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과정을 통해 공감의 힘을 직접 체험하는 훈련이었다.

이날 교육 이후, 참여자들은 교감을 통해 자신의 어려움을 다른 사람들이 집중해 경청하는 것을 보곤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는 소감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날 참여자들은 현지로 돌아가 많은 사람들이게 공감방법을 이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공감교육이 끝나고 소감을 발표하는 현지인

국내 분쟁이 잦고 피해 또한 크다보니 미얀마 활동가들은 평화교육이라는 이름을 단 교육을 많이 받는 편이다. 평화교육은 주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평화 정착, 유지에 대한 의견을 모아 정부나 군대·민족군대 그룹에 정책제안을 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 같은 방식에 익숙한 미얀마 활동가들에게 이 경청·공감 훈련(평화 훈련)은 새롭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낯선 방식의 훈련이기도 했다.

더구나 익숙한 강의식 교육이 아니라 직접 체험을 통해 경험하는 방식의 교육은 활동가들에게 잠시 혼란을 주기도 했지만 활동가 대부분이 IDP캠프로 와서 다시한번 교육을 진행해 줄 수 있냐는 요청이 이어졌다. 특히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고 교회에서 지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경청·공감 훈련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교회 지도자 및 정부 관리들에게 이날 받은 교육을 제안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양곤 4일차

이틀동안 함께 지낸 덕분에 친밀감은 훨씬 더 진해졌다. 언어의 장벽이 있었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여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드라마 영향으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등 간단한 한국어로 인사를 주고 받았으며, 쉬는 시간마다 ‘TV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예쁜 한국선생님들’이라는 칭찬과 함께 사진 요청이 줄을 이었다.

이날 교육은 ‘페미니즘 집단 상담’으로 룰루랄라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난민 여성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정서적인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하는 것이 핵심 목표였다.

교육은 ‘페미니즘 상담원리가 무엇인가’라는 이론 교육으로 시작됐는데 누구든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도움을 주는 조력자가 필요할 순 있지만 이를 바꾸는 힘은 본인 안에 있다는 것 등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으로 진행됐다.

또 한국에서 가정폭력을 주제로 한 여성단체의 상담활동 계기, 상담 시스템, 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제도 등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다. 미얀마 활동가들은 교육을 통해 한국 상황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질문공세를 이어갔다.
 

각각의 열악한 상황을 발표

오후에는 현지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부장적이고 여성을 차별하는 문화와 관습, 식량·약품 부족 등 어려운 현지 상황 등이 주를 이뤘다. 특히 ·피임도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과 잦은 가정 폭력으로 이혼시에도 여성의 양육권을 인정하지 않아 자살하는 사례 등 안타까운 사례들이 발표돼 눈물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많은 사람을 울린 사례 중 분쟁 이전의 마을 사람들은 과일 등 수확물을 나눠 먹었지만 분쟁 이후 마땅한 생계수단이 없어 아이들이 농작물을 훔쳐 비난 받았다는 이야기 였다. 현지 활동가들은 비난을 받는 아이들에게 남의 물건을 함부로 손대면 안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해 모두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다른 현지인의 발표에 공감해 눈물을 흘리는 여성

또 마약재배·판매가 금지되고 있지만 암시장에선 흔하게 거래되고 있어 청소년이 마약에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과 가족 중 마약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든 가족이 힘들어 진다는 이야기, 아픈사람은 많지만 치료할 약과 의료진이 없어 보호받을 방법이 없다 등 안타까운 사례들이 발표됐다. 또 여성을 대표할 만한 여성활동가들이 부족해 다른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과 단체 등이 절실하다는 기대감도 드러났다.

이날은 각 지에서 교육에 참여한 30여명의 여성들이 각 지역의 상황을 알게 되었고 특히 IDP캠프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의 어려움을 공감하게 됐다는 점이 매우 중요했다.

양곤에 거주하면서 NGO활동과 관련되지 않은 현지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외부인인 우리들보다 난민들의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 난민들의 이슈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주요 이슈가 되지 못 하고 있음을 추측케 했다. 그래서 여러 지역에서 온 활동가들이 난민캠프의 어려운 상황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양곤 5일차

“교육을 받으면서 상처입은 마음을 ‘룰루랄라 치치킹킹’ 이라는 말처럼 많이 치료됐다. 이런 훈련을 한번도 받아본경험이 없어서 너무 기쁘고 TV에서 본 적이 있는 한국분들 여기 와서 이렇게 만나게 돼서 너무 반갑다”

마지막 일정은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여성운동의 흐름에 대한 강의와 자신의 지역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 실천 계획을 세우고 발표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아마도 한국의 여성운동이 미얀마에 소개되는 최초의 사례였을 것이고 미얀마 활동가들은 눈을 반짝이며 깊은 관심과 흥미를 나타냈다.

한국의 여성3법(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방지법) 제정 및 폭력피해자들의 2·3차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 여성들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 여성정치인들 확대를 위한 운동, 현재의 미투 운동까지 지금 미얀마 여성운동과 비슷한 상황이었던 초기의 한국 여성운동 흐름들이 소개됐다.

쉬는 시간, 카렌 지역에서 온 여성 활동가들은 ‘한국은 여러 분야에서 발전했기 때문에 차별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라에서 한국여성들이 저렇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데, 우리도 더 힘을 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을 보곤 교육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면 생리대를 만드는 방법을 교육하는 미얀마 활동가

교육 이후 실천 계획 세우기와 소감 나누기가 이어졌다. 미얀마 활동가들은 “면 생리대 만드는 법을 청소녀들에게 알리겠다, 생리 팔찌 만드는 법을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알리겠다, 피임방법에 대해 교육하고 싶고 내면의 힘이 생길 수 있도록 돕겠다. 청소년 단체와 협력하여 건강관리, 피임방법, 면생리대 만드는 법을 나누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룰루랄라 치치킹킹 프로젝트에 참여한 활동가 대부분이 시민교육을 맡고 있어 지역의 여성들, 청소년, 어린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광주에서부터 준비한 여성건강·경청과 공감훈련·집단 상담은 난민 여성뿐 아니라 미얀마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시간의 부족은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미얀마 활동가들은 다른 곳에서 받아보지 못 한 신지식을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으로 배우길 원했지만 한정된 기간 탓에 다음 교육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현지인들과 활동가들이 함께하는 점심시간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하고 교육 마지막 날, 많은 사람들이 먼 길을 날아와 교육을 진행한 한국인 활동가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까친 지역의 난민 캠프에서 온 활동가들은 “이런 훈련을 한번도 받아본적이 없어서 너무 기쁘고 TV에서 본 적이 있는 한국분들을 만나게 돼서 반갑다” 는 소감을 전달했다.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눈 후, 까친 지역에서 온 활동가들은 1박2일이 걸리는 IDP캠프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떠났고 광주의 활동가들도 4일간의 긴장을 풀고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또한 GDI 활동가들은 함께 준비한 룰루랄라 프로젝트에 대해 “이 교육은 다른 교육과 달랐고 소스를 가진 한국인들이 왔다는 점, 한국인들로부터 듣는 한국의 이야기였다는 점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를 들으며 자극이 되었고 강력한 포인트는 강사들이 한국인, 광주에서 온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사실 미얀마의 많은 NGO활동가들은 광주나 5·18보다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을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 택시 운전사를 통해 광주를 알게 됐으며, 영화의 배경이 됐던 광주에서 온 사람들이 교육을 진행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가졌다.

룰루랄라 치치킹킹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현지 활동가 50명에게 모두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했다. 80&는 성공이었고 나머지 20%는 현장으로 돌아간 활동가들의 역할에 달려있었다. GDI활동가의 평가처럼 지역 수준에서 훈련이 얼마만큼 활용되는지가 관건이었다. 이를 위해 11월 우리는 GDI활동가들과 함께 직접 현장을 방문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실제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이라는 공간, 험난하고 척박한 삶이 이어지는 IDP 캠프라는 공간에서 우리의 프로젝트가 룰루랄라 치치킹킹(자유롭고 평화로운)한 삶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작은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인지, 광주라는 로컬과 로컬리티인 광주여성들과 미얀마의 로컬, 로컬리티들의 깊은 연대가 얼마만큼 지속가능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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