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부 능선서 멈춘 광주형일자리…고비 넘을까
작년말 市-현대차 협약 무산된후 논의 안갯속
양 측 기존 협상팀 재정비 재협상 모드로 돌입
전면에 나선 이용섭 시장 협상력에 막판 기대
논의 장기화에 피로감…정부 입장변화 조짐도
 

지난해 11월1일 현대차 투자유치 관련 이용섭 광주시장과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본부장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광주시 제공

광주광역시가 노사상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광주형일자리 협상이 좌절된지 한 달이 지났다. 광주시가 재협상키로 해 불씨는 아직 살아있으나 추진 과정은 안갯속이다. 그동안 ‘광주’만의 전폭 지지 입장에 있던 정부의 시각 변화 조짐도 감지되면서 성과를 내야하는 광주시의 호흡이 빨라질 수 밖에 없게 됐다. 9부 능선에 멈춰선 광주형일자리의 진행 과정과 향후 가능성을 정리했다.

▲자동차산업 위기가 태동 배경
지난 2014년 3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장 출마를 앞둔 윤장현 전 YMCA 전국연맹이사장은 전격 독일 슈투트가르트를 방문한다. 광주 지역경제의 30%를 차지하는 자동차산업이 생산성 저하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인식이 그를 독일로 이끈 것으로 보인다.

귀국 후 그는 곧바로 시장 출마를 선언하고 광주형일자리 창출 모델을 선거 핵심공약으로 제시했다.

이후 시장에 당선된 윤 전 시장은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해 초임 연봉 3천만∼4천만 원대의 자존감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대한민국 제조업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다’는 슈투트가르트 구상을 구체화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당시 윤 전 시장의 슈투트가르트 구상은 ‘AUTO(아우토)5000’ 모델에서 출발했다.

▲독일‘아우토5000’ 이 모델
자동차 회사인 폴크스바겐은 1999년 노조에 독립법인을 만들어 임금을 낮게 잡는 대신 일자리를 만드는‘아우토5000’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현재의 우리나라처럼 최악의 실업율에 허덕이던 독일은 비용절감을 통해 고용기회를 늘리기 위해서 이같은 복안을 내놨다. 새 공장을 지어 기존 임금의 80% 수준(월 5천 마르크)에 주당 근로시간 최대 48시간인 일자리 5천개를 만드는 것이 골자였다.

이같은 배경을 안고 추진된 ‘아우토5000’계획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원칙’을 내세운 노조의 반발로 한때 협상 결렬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독일 총리의 중재로 2001년 독립자회사로 ‘아우토 5000 GmbH’를 출범시키는데 성공했다.

새 공장에서는 2002년 미니밴 ‘투어란’ 생산으로 2005년 미니밴 시장 27%를 점유하는데 성공했고 이를 기반으로 2007년 ‘티구안’신화를 이어갔다.

노조는 이후 인금인상 등의 요구를 하지 않고 5천 마르크 임금을 8년간 유지했다가 2009년 ‘아우토5000’이 종료된 폴크스바겐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 5년여 추진 과정
윤 전 시장은 광주형일자리를 실현하기 위해 2014년 시 조직개편을 통해 사회통합추진단을 발족한데 이어 11월 민간기구인 자동차밸리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2015년 국책연구기관인 노동연구원은 광주형일자리 모델 연구용역에서‘주 40시간 근무에 초임 연봉 4천만 원’의 광주형 일자리의 밑그림을 제시했다.

이어 2016년 더좋은 일자리위원회가 설치되고 광주형 일자리 관련 조례들이 제정됐다. 한국노총 등 지역 노동계도 공감하고 동참을 선언하고 나섰다.

드디어 지난해 6월1일 현대차의 투자의향서가 접수되면서 현실화되는 듯 했다. 투자의향서에는 광주시와 현대차가 빛그린산단 62만8천㎡ 부지에 7천억 원을 투입해 합작법인을 세우고 연 10만대 규모의 1천cc 미만의 경형 SUV(스포츠유틸리이차)공장을 세우는 내용을 담았다.

생산직과 경력관리직 1천여명에 간접고용까지 더하면 1만∼1만2천여명에게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졌다.
 

현대자동차 실무진 9명이 지난해 6월4일 완성차 공장이 들어설 빛그린산단에서 현장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광주시 제공

▲협약 조인 앞두고 막판에 무산
그러나 ‘저임금 무노조’ 협상 내용이 노출되면서 6월19일 문재인 대통령까지 참석키로 한 투자협약식은 행사 하루 전 전격 취소됐다. 일각에서 광주시가 성과에 급급해 치밀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후 광주형일자리를 배턴을 넘겨받은 민선 7기 이용섭 시장은 6개월 동안 도시철도2호선과 함께 광주형일자리에 매달렸다. 그 결과 평균 초임 3천500만 원에 정부와 지자체가 주거와 복지시설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타결 성사를 앞두는 단계에까지 접근했다.

하지만 막판 ‘임단협 5년 유예조항’을 놓고 현대차와 지역노동계의 견해차로 12월6일로 예정된 최종 협약서 조인이 또 다시 무산됐다. 현대차가 노사민정협의회 수정안에 대해 불신을 보이며 거부했기 때문이다.
 

광주형일자리 협약이 무산된 직후인 지난해 12월 10일 빛고을체육관에서 완성차공장 유치를 위한 범광주시민결의대회가 열렸다./광주시 제공

▲수면에 가라 앉은 협상
이후 연말과 연초에 광주시와 현대차는 협상팀을 재정비했다. 협상단 단장을 자임한 이용섭 시장은 “결과로 말하겠다”면서 재추진과 성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정부와 여당도 광주형일자리에 대한 변함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만 광주형일자리 성공적인 추진을 3차례나 강조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정부의 인식 변화도 감지돼 갈길이 바쁜 광주시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7일 울산에서 열린 지역경제인들과 오찬 간담회에서 “광주형 일자리가 광주에서만 하는 정책이 아니라 어느 지역이든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다”면서 “어느 지자체이든지 이를 추진할 경우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광주형일자리에만 매달리지 않고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결과물을 낼 수 있다면 모든 지자체에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기대 속 향후 전망
광주시는 관심이 쏠리고 있는 협상과정에 대해 극도로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내부 실무진 조차도 극소수만 정보에 접근하고 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광주형일자리와 관련해서는 모두가 이용섭 시장의 입만 주목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이 시장은 일련의 추진 과정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일체 함구하고 있다. 광주시나 현대자동차 모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이번 협상이 사실상 마지막이나 다름없어 실패할 경우 향후 미칠 파장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광주시 한 관계자는 “현재는 어떤 정보도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 “협상 결과가 나오는 날이 곧 협약이 성사된 날이 되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박재일 기자 jip@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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