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로의 삶…정광호 제3대 광주시장을 아시나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참여…광주부윤·제헌의원 등 역임

6·25 전쟁 당시 납북 ‘아픔’…고난의 역사 속 잊혀진 정치인

3·1운동 100주년 맞아 재조명…광주시, 고증 거쳐 초상화 게시
 

이용섭 광주시장이 최근 시청 중회의실 역대시장 사진게시판에 정광호 제3대 부윤의 초상화를 게시하고 있다. /광주시 제공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대한제국 청년들이 그렇게 염원한 단 하나의 소원은 아마도 조국의 독립이었을 것이다. 시대의 어둠을 넘어 역사의 아픔을 딛고 ‘대한민국 독립’을 목청껏 외치던 이들 속에는 제3대 광주부윤(지금의 광주시장)으로 기록된 독립운동가 정광호씨도 함께였다.

광주 독립만세운동을 기획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적극 나서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최전방에 나섰지만 납북의 아픔 탓에 지역사회에서 잊혀진 고난의 정치인, 정광호 전 시장의 초상화가 수 십년만에 광주시청에 내걸렸다.

11일 광주시에 따르면 제100주년 3·1절을 맞아 최근 시청 중회의실 역대시장 사진게시판에 정광호 제3대 부윤의 초상화를 게시했다. 당시 광주시장인 부윤을 지낸 지 70여년만이다.

정광호 제3대 부윤은 1987년 광주 사동에서 태어나 1912년 광주공립소학교(현재 서석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한성관립사범학교를 마치고 광주능주보통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동경 유학길에 올랐던 정 부윤은 1919년 2·8운동, 동경조선청년독립단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또 최한영, 김강 등과 더불어 광주 독립만세운동을 기획했던 그는 3·1운동 직후 일제의 눈을 피해 중국 상해로 발길을 돌렸다.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교통부 참사를 지낸 정 부윤은 1927년에 귀국하게 된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서울에서 사업을 하며 몸을 낮췄던 그는 1945년 한국민주당 창당발기인을 계기로 1947년 6월부터 1948년 5월까지 고향인 광주에서 제3대 광주부윤을 지냈다.

1948년에는 광주 최초 제헌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활동하기도 했다. 곡절 끝에 서울로 올라간 그는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자신의 자택에서 북한군에 연행돼 납북됐다.

독립투쟁과 선구적 정치인의 길을 걸었지만 남북 분단과 이념 갈등 속에서 잊혀져가던 정 부윤은 지난 1990년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운동 애국장 서훈을 받으면서 독립운동가의 삶을 인정받았다.

이후 30여년이 흐른 2019년 3월, 광주시는 제100주년 3·1절과 임시정부수립을 맞아 정 부윤의 초상화를 광주시청에 당당히 내걸었다. 초상화는 고증과 자문을 거친 뒤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박태규 화백이 그렸다.

이용섭 시장은 “대한민국이 놀라운 성장과 발전으로 경제대국이 된 바탕에는 이 땅의 자주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신 수많은 분들이 있었다”며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시대정신과 대의를 쫓아 희생으로 역사의 물꼬를 바로 돌렸던 분들이 계셨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세영 기자 jsy@namdonews.com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