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11)염암재-가는정이 구간(2018. 12. 1, 2019. 1. 3)
처음부터 급경사 ‘염암고개’ 소금처럼 짠 길 실감
반원형으로 돌아나가는 오봉산 산세 부드럽고 정감
정상 오르니 바로 코앞에 옥정호…조망 더할 나위 없어

호수 위 다리 ‘사이먼 앤 가펑클’ 노래 가사 생각케 해
빨리 가려다 또 알바…‘편법은 안 좋다’는 깨달음 얻어

국사봉 향하는 길에 해발 330m 지점 묏등에서 바라본 옥정호. 호수 위에 고운 자태로 서 있는 ‘전주-순창’간 운암대교가 사이먼 앤 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 가사를 생각나게 한다.

모처럼 친구 이겸신 군과 호남정맥 종주에 나섰다. 마침 송현규 변호사님이 핸드폰에 오룩스 앱을 깔아주시고 사용법을 알려주셔서 더 이상 알바할 일이 없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정맥 길에서 30m만 벗어나면 앱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하니 엉뚱한 길로 갈 위험성이 거의 없는 셈이다.

9시 반경 염암고개에 도착해 오룩스 앱을 켜고 앞에 보이는 언덕을 향해 무심코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너무나 급경사에 로프까지 타는 구간이 계속돼 염암고개 근처는 소금처럼 짠 길이라고 생각하며 초벌 땀을 흠뻑 흘렸다. 30여분을 고생하고 잔잔한 오솔길에 이르니 ‘이곳이 작은 불재입니다’라고 ‘준·희’가 쓴 리본이 보였다.

그런데, 바보 같은 나는 ‘왜 지난주에도 작은 불재를 넘었는데, 여기에도 같은 재가 있네’라고 무심코 생각하며 다시 산을 올랐다. 오룩스 앱에서는 호남정맥 길을 잘 가고 있는 것을 증명하듯 아무런 경고음도 울리지 않는다. 결국 산행시작 두시간 만에 염암고개에서 3.7km 떨어진 치마산 정상에 올라서야 정맥 길을 반대로 타버린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마침 인천 조은산악회에서 호남정맥 길을 3시부터 타느라 맞은편에서 계속 회원들이 달려 내려오고 있었는데도 아무런 눈치도 못 챈 것이다.

결국 치마산에서 다시 염암고개로 내려오는 길을 택했는데, 다시 염암고개에 다다르기 전 허기가 져서 점심을 먹었다. 이제 오룩스를 깔았으니 30m이상 알바할 일이 없다고 장담했는데, 결국 7.4km를 알바하고 말

호남정맥 길을 동행한 친구 이겸신.

았으니 기계를 너무나 믿은 내가 잘못이다. 오후 1시 반이 넘어 산행기점인 염암고개로 돌아와 이번에는 오봉산 방향으로 임도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바로 숨을 헐떡이며 올라온 480봉에는 잘 가꾸어진 잔디밭이 있을 뿐 아무런 표지도 없고 계속 진행을 해도 소금바위로 보이는 바위는 발견할 수 없다. 30여분 만에 도구봉을 넘었는데 그 다음은 낙엽이 잔뜩 쌓인 하산로가 너무나 가파르게 펼쳐져 있다. 군데군데 설치된 로프가 아니면 앞으로 곤두박질 칠 정도로 경사가 심하고, 참나무 낙엽들은 눈보다도 더 미끄럽고 제동이 안 된다. 가끔은 낙엽 속에 숨은 날카로운 바위나 자갈이 있어서 함부로 내려가다가는 크게 다칠 위험도 있어 보인다.

지난주부터 무릎 통증이 생겨서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도 핸디캡이다. 나고야 변호사회와 교류차 일본에 가서 생맥주와 라면을 밤마다 계속 먹어댔더니 갑자기 체중이 85킬로를 넘게 되었는데, 그 후로 산행에서 무릎 통증이 시작되었다.

1시간여 만에 오봉산 제2봉이라고 쓰여진 봉우리에 올랐다. 표지판을 보니 오봉산 제1봉은 정맥 길에서 벗어나 있고, 2봉부터 5봉까지가 정맥 길을 잇고 있다. 오봉산 제2봉과 제3봉 사이에는 해발 475m의 고개가 있고, 오봉산 제3봉과 제5봉 사이에는 제4봉인 495고지가 있다. 오봉산 능선을 반원형으로 동그랗게 왼쪽으로 돌아나가는데 산세가 부드럽고 정감이 있다.

오후 4시경 5번째 봉우리인 오봉산(513m)에 다다랐다. 정상 옆에 있는 데크에서는 한 젊은이가 텐트를 설치하고 비박을 준비하고 있다. 근처에 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옥정호가 바로 코앞에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조망은 더할 나위가 없어 보인다.

오봉산을 내려오니 5시가 되어 벌써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할 수없이 오봉산 아래에서 만난 지방도에서 택시를 불러 차를 주차해 둔 옥정호 산장으로 가서 산행을 마무리 지었다.

오봉산 이정표.

(2019. 1. 3.)
재판이 없는 휴정기를 맞아 급하게 땜방 산행에 나섰다.

11시 20분경 지난번에 내려온 오봉산 밑 완주벧엘기도원 입구 길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정맥 길은 겨우 몇 백미터를 간 다음 다시 도로로 내려와 도로 오른쪽 길로 오르기 시작한다. 군데군데 며칠 전 내린 눈이 5cm 정도 쌓여 있어서 북사면에서는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다.

임실군에서 ‘옥정호 물안개길’을 조성하면서 국사봉 쪽으로 길을 잘 닦아 놓았는데, 정맥 길은 잘 몰라서 그런지 자연 그대로 보존해 놓았다. 한편으로 거친 길을 원망하다가도 임도처럼 편안한 길을 지나가다 보면 이것이 트래킹인지 산행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지자체에서 정맥 길에 최소한의 이정표나 위험구간에 데크 계단이나 밧줄 정도만 설치해 주었으면 싶다. 눈앞에 보이는 330고지와 360고지를 눈 때문에 힘들게 오르고 나니 벌써 배가 고프다. 결국 12시 40분경 운암삼거리 조금 못 미친 330봉에 다다라 햇볕이 잘 드는 묏등 앞에서 도시락을 꺼내고 말았다.

태양은 옥정호의 물빛을 하늘색으로 물들이며 빛나고, ‘전주-순창’간 4차선 도로가 연결되는 현수교가 옥정호 위에 매달려 있다. 그 너머에는 운암대교가 고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데, 지역과 지역을 연결해 주는 다리는 그 자체가 고마운 존재다. 젊어서부터 흥얼거리던 사이먼 앤 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 가사가 자꾸만 생각난다. 1시경 점심을 마치고 운암삼거리 쪽으로 하산 길에 올랐다. 정맥 길은 도로를 만나고 미암교를 지나 운암삼거리로 이어진다. 운암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도로로 몇 십미터 가면 정맥 길이 이어진다.

오봉산 정상 표지석과 필자.

나는 택시에 지도를 놓고 내리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도로를 따라 걷다가 그만 복채헌이라는 건물 비석이 있는 곳에서 초당골로 접어들고 말았다. 결국 정맥 길을 오른쪽에 놓고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 길을 택했는데, 믿었던 오룩스 앱은 경고음도 내지 않는다. 초당골에서라도 정면에 보이는 360봉 쪽으로 올라갔어야 했는데, 쉽게 가려고 묵방산 허리를 그대로 올라갔는데 100여미터를 앞두고 임도는 끊어지고 가시덩굴이 우거진 험로가 길을 막는다.

마침 남도일보 정용식 상무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내일부터 내 호남정맥 산행기가 위 신문에 연재될 거라며 원고와 사진을 보내라고 한다. 급히 사무실에 연락을 해 이미 써놓은 원고를 보내고, 사진은 내 핸드폰에서 직접 남도일보 김명식 기자께 보냈다.
 

정맥길에서 만난 팽나무. 마을이 있을 때는 당산나무였을 것 같은 당당한 모습인데 근처에 집들은 사라지고 홀로 선 모습이 슬픈 생각이 들었다.

빨리 가려고 정맥 길이 아닌 임도를 택한 편법을 쓴 행위는 30분여의 악전고투로 이어졌다. 가까스로 장갑 낀 손으로 가시덩굴을 헤치고 등산화 발로 가시나무를 밟으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지만 10m 올라가는데 5분은 족히 걸리는 것 같다. 게다가 눈에 덮힌 낙엽들을 밟으면 힘없이 주저앉으며 미끄러져서 더욱 오르기가 힘들다. 2시 30분이 넘어서 538m인 묵방산 정상에 올랐다. 묵방산은 근처에 높은 산이 없어서 그런지 조망이 기가 막히다. 다만 키가 큰 참나무들이 많아서 시야를 가리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묵방산을 지나면 여우치 쪽으로 급한 하산길이 이어지는데 여우치 쪽에는 작은 마을을 만난다. 위 마을에서 정말 보기 드문 전원주택을 보았는데, 세 칸짜리 스레트 기와 농가주택을 외관을 거의 고치지 않고 대문과 마당만 손보아 만든 집이다.

아마도 다해서 꾸미는데 몇 백만원도 안 들었을 것 같은 집인데, 요즘 유행하는 멋진 집보다도 눈에 확 들어왔다. 위 마을을 지나는 정맥 길에는 오래된 팽나무도 한그루 보이는데, 마을이 있을 때는 당산나무였을 것 같은 당당한 모습인데 근처에 집들은 사라지고 홀로 선 모습이 슬픈 생각이 들었다.

여우치에서 옥정호 산장이 있는 가는정이까지는 완만한 하산길이 이어지고 불과 20여분 만에 가는정이에 다다랐다. 너무나 많은 알바와 시행착오를 겪은 산행이었다. 중간에 포기하면 다음에 더 고생한다는 것과 빨리 가려고 편법을 쓰면 뒤끝이 안 좋다는 평범한 깨달음을 얻은 산행이었다./글·사진=강행옥

초당골 쪽에서 만나 ‘복채헌’ 건물 표지석.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