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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이후
조국 이후

박상훈(정치발전소 학교장·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박상훈
공정한 입시 경쟁, 평등한 교육 기회를 우리는 말할 수 있을까?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사람들이 특권과 반칙 없는 사회를 말하고, 세습 자본주의는 안 된다며 부모의 영향력과 부가 대물림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 진정성은 인정을 받을까? 전처럼 한국사회의 양심 세력으로 존경받을 여지는 남아 있을까? 2016년의 촛불집회가 보수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표출한 계기였다면, 이번 조국 논란은 진보개혁 세력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갖게 한 것은 아닐까?

대통령은 왜 그토록 조국을 고집했을까? 야당의 결사반대와 시민들의 큰 실망감을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긴 걸까? 국회의 반응과 상관없이 장관 인사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 걸까? 공직자가 가져야 할 ‘공적 의무감’(officium)은 누구에 대한 것일까? 공동체의 구성원일까 아니면 임명권자인 대통령 개인일까? 정부 권력을 세 부서로 분립시켜 서로에 대해 견제와 균형의 규범을 준수하게 하는 것을 ‘수평적 책임성’(horizontal accountability)이라 하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통해 사회 여론에 반응하게 하는 것을 ‘수직적 책임성’(vertical accountability)이라 하는데, 이 책임성의 규범을 존중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조국의 명예를 지키는 동안 시민과 국회가 안게 된 불명예는 어찌할 것인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왜 ‘조국 인사’에 문제는 없고 ‘검찰 항명’이 문제라며 열렬 지지자를 동원해 생각이 다른 시민과 전쟁에 나선 걸까? 누가 보수의 대규모 집회를 불러오고, 누가 자유한국당의 위세를 키웠을까? 대통령의 권위를 ‘조국의 후견인’ 수준으로 떨어뜨린 사람은 누굴까? 대통령을 돕고자 한 유 이사장의 선택이 대통령의 자유의지를 묶어두고 정권을 위기로 몰아가는,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진 것을 후대의 역사학자들은 어떻게 설명할까? 사태가 잘못돼 가고 있다고 느끼며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판단한 대통령의 참모는 없었을까? 청와대 밖 대통령비서실 같은 역할을 해 온 민주당은 대통령 지지율의 급락을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국 정치가 ‘유시민 대 홍준표’의 싸움으로 퇴락하는 것에 비례해, 집권당의 위신이 함께 떨어지는 것을 왜 몰랐을까?

이재명 경기지사와 뒤이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뜻밖의 ‘조국 수호’는 어떤 의도였을까? 정의를 수호하고자 한 결의였을까? 그랬다면 자신들의 굳건한 정의감을 그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표출하며 싸움의 최전선에 나서야 했던 건 아닐까? 신념의 힘을 보여준 것도 아니고, 정치가다운 당당함을 견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 이사장과 같은 맹렬함도 보여준 적 없는 그들은 이번 사태에서 무슨 일을 한 걸까? 정의당은 또 어떤가? ‘민주당 2중대’ 내지 ‘관변 야당’이라는 오명을 감수하면서까지 보여주고자 했던 특별한 문제의식이 있었을까? 포기할 수 없는 정의감 때문이었다면 정의당은 왜 서초동 집회에 떳떳하게 참여하지 않은 걸까?

직접 민주주의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그간 어디에 있었을까? 2016년에서 2017년으로 이어진 촛불집회 동안 발휘되었던 그들의 열정이 이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표출되었을까? 대규모의 서초동 집회를 통해,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헛된 기대를 버리게 하고 직접 국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광장 민주주의’로 전환할 기회로 삼으려 하지 않았을까? 복잡하고 힘들게 탄핵 절차를 밟을 것 없이 국민의 의사를 직접 물어서 대통령의 진퇴를 결정하면 된다던 그들이, 이번에는 왜 광화문과 서초동 집회에 직접 참여한 시민의 숫자나 여론조사를 기준으로 결론을 내자고 하지 않았을까? 광화문 집회 참여자가 소수였거나, 여론조사가 나쁘지 않았다면 진짜로 직접 민주주의 하자고 하지 않았을까?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동료애도 있어야 하고 서로를 지지해주는 형제애와 우정도 필요한데, 그간 우리는 이런 인간적 자산과 신뢰 관계를 갈라놓을 만큼 절대적인 문제를 두고 다퉜던 것일까? 조국 논란에 관여하는 일이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동안 모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의견이 달라도 시민적 정중함은 갖춰 대화하고,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심리적 기반은 공유했어야 했는데, 그 긴 상처의 시간 동안 대화 불가능한 상대 이름의 목록만 늘려온 그 비극적인 일에서 우리는 왜 헤어나오지 못했을까? 그간 우리는 대체 서로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누가 일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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