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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61)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61)
제4부 풍운의 길 3장 안현전투(461)

한편 임경업은 큰 한지에다 ‘대역죄인 이괄의 목’ ‘대역죄인 한명련의 목’ ‘대역죄인 수의 목’ 이렇게 아홉장을 써서 말 잔등에 하나씩 붙이고 수급(首級: 싸움터에서 베어 얻은 적군의 머리)도 하나씩 매달아 대롱거린 채 공주로 향했다. 한참 가다 말고 임경업이 휘하 군관 정여립(기축옥사의 정여립과 동명이인)에게 명했다.

“나는 다른 급한 일 때문에 회정(回程:가던 길을 되돌아가는 길)해야 하니 그대가 시각을 다투어 공산성으로 가서 역적의 수급을 전달하고 상감마마의 근심을 안위시켜 드리도록 하라.”

임경업도 생각해보니 정충신 전부대장의 배려를 받기가 민망하였다. 이괄을 진압한 절대적 전공은 정충신에게 있는데, 자신에게 공을 돌리려고 이괄의 수급을 전달하라고 하니 명색 자존감이 있는 장수로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임경업은 개선한 정충신을 위한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도원수부로 달려갔다. 정충신이 그를 발견하고 놀라면서 물었다.

“아니 임 장수, 지금쯤 용인을 지나 오산 쯤 가있어야 하는 것 아니오?”

“전부대장 어른, 그것은 소관의 일이 아닙니다. 적의 머리는 지금쯤 직산을 지나 천안 쯤 가고 있을 것입니다. 차령산맥을 넘으려면 하루 더 걸리겠지요.”

“그런데 왜 되돌아 왔소? 나는 생각이 있어서 임공에게 적수(敵首:적의 머리)를 호송하라고 명했는데, 중도에 돌아오다니, 전부대장의 명을 불복하는 것이오?”

“황송하옵니다. 사실 소인은 이번 싸움에서 이렇다 할 전공을 세운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면목으로 정 전부대장보다 먼저 상감을 뵈옵겠습니까. 정 전부대장의 깊은 배려를 안 것만으로도 소인은 감읍할 따름입니다. 그 후의를 생각하면 아직도 엄동설한인데 제 몸이 후끈 덥혀지고 있습니다. 널리 접어 생각해주십시오.”

“허허, 사람 하고는....”


정충신은 먼 하늘을 쳐다보다가 임경업의 등을 감싸안으며 잔치상으로 갔다.

이괄 등 아홉의 머리가 공주 공산성 행재소에 당도한 것은 2월16일 황혼녘이었다. 철늦게 진눈깨비가 흩날리더니 오후부터는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눈발이 드세기 시작했다. 눈발이 흩날리는 가운데 행재소 앞뜰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벌써 소문이 퍼져서 공주 읍내는 물론 한밭, 연기, 부여, 청원, 조치원 사람들까지 수천명이 모여들어 역적들의 머리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행재소 뜰에 아홉 개의 머리통이 가로로 나란히 놓이자 영의정이자 도체찰사인 이원익이 나와 수급을 일일이 확인한 뒤 왕에게 “전하, 난이 평정되었나이다” 하고 고했다.

국왕이 난을 당해 파천을 하게 되면 종묘사직도 함께 이동하는데, 이날 이원익이 종묘사직에 난이 평정되었음을 고하는 의식을 치렀다. 왕은 전복 차림으로 임시로 차려진 대전에서 나왔고, 문무백관들도 전복 차림으로 왕 곁에 섰다.

이원익이 고유문을 낭랑한 목소리로 읊었다.

“영의정 겸 도체찰사 신(臣) 이원익 천지신명과 종묘사직께 아뢰옵니다. 역신 이괄, 한명련, 이흥립, 이수 등이 서북 변방에서 난을 일으켜 지엄하신 조정에 덤벼들어 도성을 도적질하여 한때나마 차지하고, 궁궐을 불태우며 백성을 잡아죽이고 제물을 약탈하였나이다. 다행히 하늘, 땅, 신(神), 백성의 도움에 힘입어 도원수 장만, 전부대장 정충신이 관군을 지휘 감독하고, 용맹을 떨쳐 무찔러서 안현전투에서 크게 이겼습니다. 이에 적이 남은 무리를 거느리고 밤에 달아나므로 정충신의 군사가 번개같이 추격하니 경기도 광주에 가까워지자 적의 무리가 저 살자고 모두 흩어졌는데, 보름날 밤에 역적이 그 수하인 기익헌, 이수백, 이선철에게 목을 잘렸나이다. 이에 역적 이괄과 그 아우 수와 역적 한명련과 그 조카와 무리의 중군장 원종경 등 머리 아홉 개가 행재소에 바쳐졌으니 이는 종사와 신민의 경사이옵고, 신들은 기쁨을 이길 수 없어 삼가 춤을 추며 노포(露布:은혜를 베풀다)로 아뢰나이다.”

고유문을 다 읽고 나자 왕이 위패 앞에 무릎 꿇어 정중히 절을 했다. 도열했던 문신, 무신, 유생들도 국궁(鞠躬: 위폐 앞에서 올리는 배례)하면서 눈시울을 적시며 “천세천세, 만천세!”를 외쳤다.

왕은 이원익의 추천을 받은 윤방을 환도수습대책위원장으로 내세워 즉시 환도하도록 명했다. 환도 준비가 끝나면 환궁할 참이었다. 윤방은 영의정을 지낸 윤두수의 아들이며, 할아버지 또한 국자감정을 지낸 사람으로 집안 대대로 조선사회의 대표적 문신이었다. 그는 선조 시대부터 예조정랑, 홍문관 수찬, 광해군 시절에는 병조판서, 동부승지, 한성판윤을 지내고, 인조 대에는 좌의정을 지냈다.

주요 직책을 이렇게 회전문 인사로 가로막기 하니 탕평인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개인의 인물이 출중해도 인사가 늘 이러니 백성들에게는 감명을 주지 못했다. 이런 것들이 이괄의 난을 일으킨 배경이 되었지만 조정은 시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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