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오치남의 우다방 편지-이준석 나비 효과…호남 정치 미래

오치남<상무/정치·편집 데스크>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당선을 지켜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우리나라 주요 정당 사상 최초 ‘30대·0선 의원’ 당수 탄생이란 역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줄곧 대한민국 정치사의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은 호남 정치의 현주소가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이준석 돌풍’은 이미 예고됐다.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 이전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렸다. 일부에선 우리 정치사의 큰 이변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시대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4·7 재보선에서 확인된 2030세대의 ‘정치 변혁’ 열망이 반영됐다. 세대교체를 바라는 전 국민적 바람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시쳇말로 ‘꼰대 정치’, ‘훈수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는 메시지다. ‘포퓰리즘’에 기대는 기성 정치인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선거운동 당시부터 기존 정치 틀을 깼다. 이른바 3無(캠프사무실·문자홍보·지원 차량) 운동 실천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정치 입문을 시켜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감사하다”라면서도 “탄핵은 정당했다”라는 소신 발언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례적으로 지난 14일 서울현충원 대신 천안함·연평도 희생 장병 묘역이 있는 대전현충원을 찾은 뒤 곧바로 광주 동구청에 마련된 학동4구역 철거 현장 건물 붕괴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한 뒤 “5·18 이후 태어난 첫 세대의 대표로서 광주의 아픈 역사에 공감한다”라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이 거듭 미뤄지고 있는 것에 대해 “전 전 대통령이 재판에 대해 불성실한 협조를 하는 것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용섭 광주시장과 만나 “건물 붕괴 참사와 관련, 광주시민들의 아픔이 큰데 야당으로서 협조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하겠다”라고 했다.

‘이준석 돌풍’과 관련, 남도일보가 광주지역 30대 정치인들과 통화한 결과,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강수훈 민주당 광주시당 정책실장은 “30대 거대 야당 대표를 보며 부럽다, 무섭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래세대가 지향하는 가치를 관통하는 새로운 어젠다를 내놓고, 뜨겁게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어야 한다”며 “앞으로 벌어질 혁신경쟁에서 민주당이 절대 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임석 남구의원은 “그동안 민주당에서도 청년층 시민들이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20년 이상 정치판에서 오래 있었던 분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 힘이 덜 실려왔고, 신진세력이 뜻을 펼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박진원 동구의원은 “더 이상 선거철만 되면 이용당하는 청년 세대가 아닌, 이제 정치 전면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준석 돌풍’이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미지수다. 하지만 여당이자 광주·전남지역 강세 정당인 민주당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386세대와 운동권 출신 중심의 지도부가 2030세대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면 두 선거 모두 ‘필패(必敗)’라는 위기감에서다.

이준석 대표가 당선된 지 채 2주일도 지나지 않았으나 ‘돌풍’이 ‘나비 효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가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기존 최고치를 넘어섰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14~18일 전국 만 18세 이상 2천5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도는 전주보다 0.6%포인트 오른 39.7%로 집계됐다. 민주당은 전주보다 0.2%포인트 오른 29.4%였다. 양당 간 격차는 10.3%포인트로 14주 연속 오차범위 밖이었다.

주중집계 기준(월~금) 국민의힘 지지도는 3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며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본격화 이후 최고치다. 이번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준석의 ‘나비 효과 ’가 얼마나 지속될지, 어느 정도 파괴력을 낼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호남 정치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주기엔 충분하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가 내년 대선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젊은 정치인을 키우지 못해 대통령감도 없고, 대통령을 만들 ‘킹메이커’도 없다는 우려는 진행형이다. ‘공천=당선’이란 공식을 세운 맹목적인 특정 정당 지지, 계파 정치, 꼰대 정치 등이 복합적으로 빚어낸 산물이 아닐까 싶다.

끊임없는 개혁과 혁신 대신 잘못된 정치문화에 안주한 기성 정치인도 문제이지만, 유권자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4·7재보선 전후로 급격히 악화된 호남 민심을 달래기 위해 민주당 지도부가 21일 광주시청과 전남도청에서 예산정책협의회를 개최했으나 지역민의 마음을 되돌릴 메시지는 내놓지 못했다.

그렇다고 먼 산만 쳐다볼 수 없다. 씨앗을 뿌리지도 않고 열매를 따먹으려는 ‘도둑 심보’는 버려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호남 정치가 변해야 산다. 우리 스스로 젊고 유능한 정치인을 길러내야 한다. 특권 의식과 독단 등에 사로잡힌 기성 정치인도 과거의 악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후배들을 위해 과감히 길을 비켜줄 결단도 내려야 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을 버리고 희생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싹수없는 정치인’도 ‘싹수 있는 정치인’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책무다. 광주·전남 지역민들도 혈연·지연· 학연을 떠나 ‘정치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을 모아주지 않으면 호남 정치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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