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개국 공신 류차달 시조
류경 무신집권 바로잡아 왕권세워
청렴·효행 독실한 인물들 배출
세한도 소나무처럼 文忠 계승 힘써

효행·충절 계승한 고려명족의 후예

환산정 측면

전남 화순 동면 서성리 화순천 상류에는 무등산자락에서 흘러내려 아름다운 호수를 이루는 서성제가 있다. 잔잔한 호수와 조화를 이루며 한폭의 세한도처럼 노송의 그늘에 단아하게 세워진 정자가 환산정(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35호)이다. 나라잃은 한으로 세웠다는 환산정을 보존하며 350여년 세계를 이어온 문화류씨 검한성공파 류원현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

◇명필 류공권 학덕 이은 후손
문화류씨는 고려 대승 류차달을 시조로 모신다. 그는 후삼국시대 황해도 유주 출신으로, 왕건 군대의 군량보급에 문제가 생기자 수레 1천량의 군량을 조달해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워 삼한공신, 대승에 올랐다. 태조가 이차위달(以車爲達)이라하여 차달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7세인 류공권(1132~1196)은 도량이 깊고 초서와 예서에 능해 과거에 급제하고 병부낭중을 거쳐 예빈경으로 금나라에 다녀왔고 동지추밀원사를 역임했다. 병으로 인해 세 번이나 물러날 것을 청했으나 명종은 정당문학 참지정사를 제수했다. 그의 아들은 무장으로 상장군,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류언침(?~?, 상서공파 파조)과 류택이다. 류택(?~?)은 의종 때 과거 급제하고 벼슬은 상서우복야 한림학사승지에 이르렀고 복야공파를 열었다.

◇고려사 열전 기록된 인물
9세 류경(1211~1289)은 문장이 뛰어나 고종 때 과거 급제해 국자감 대사성에 올랐다. 그는 흉년에 백성을 돌보지 않아 민심을 잃은 집권자 최의를 죽여 수대에 걸친 최씨 무신집권을 끝내고 고종의 문치시대를 열었다. 그 공으로 추성위사공신, 상장군 우부승선에 올랐으며, 그의 아들 류승이 6품 관직을 하사받고, 고향인 유주도 문화(文化)로 개칭, 현으로 승격됐다. 문화류씨의 관향 문화현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는 정방을 개혁하고 문화시랑 동중서문화평장사로 국정을 책임지다 모함을 받아 가산이 몰수되고 흑산도에 유배됐다. 풀려나 평장사, 찬성사, 판판도사사로 재상에 복귀해 정화궁주, 김방경 등의 무고를 밝히기도 했다. 그가 국자감시, 예부시로 있을 때 이존비, 안향, 안전, 이혼 등을 문생으로 발탁해 당대의 명사로 이끌었다. 11세 류돈(1274~1349)은 청렴과 효행으로 알려진 첨의참리 류승(1248~1298)의 아들로서 과거 급제해 대사헌을 거쳐 첨의찬성 시녕군에 올랐다. 고려 명문세족 문화류씨의 이와같은 선현들이 모두 고려사열전에 기록돼 그 행적이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그의 아들 류원현(?~?)이 태종조 검한성사를 지내고 검한성공파 종가를 열었다.

◇의로운 정신 깃든 환산정 보존
13세인 류선(1367~?, 호는 정묵재)은 부평부사, 한림을 역임했고, 그 아들 류효진(1407~1484)은 군자감부정, 사헌부집의, 연안, 양주, 파주 등의 목사를 역임했다. 16세 류수언(1476~?)은 교리를 역임했고, 그의 아들 류덕용(1536~1628, 호는 열역재)은 효행이 독실하고 절개가 곧은 유학자로서 과거를 보지 않고 오직 학문탐구에 전념해 주역에 심취했다. 그는 한겨울에 연꽃을 구해 병든 부모를 낫게 했다는 일화와 함께 극진한 효행이 알려져 양덕현감에 제수됐다.

류덕용의 아들인 18세 류홍(1556~1592)은 무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 부장으로 참전, 평양에서 전사해 병조참의에 증직됐다. 해주최씨와 혼인한 그의 딸은 1593년 진주성전투에서 왜적에게 붙잡혔으나 죽음으로 절개를 지켰다고 진양지 열녀조에 기록됐다. 류함(1576~1661)은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6부자가 떨쳐 일어나 조수성 등과 함께 인근 각지에 격문을 띄우고 의병 창의 했다. 의병군을 이끌고 남한산성을 향해 청주까지 진군했을 때 강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왔다. 그는 화순 서암산 아래 소나무를 심고 우국지한을 달래며 환산정을 세워 은거했다. 종가는 류지성(1603~1672), 류지서(1611~1674), 류광재(1661~1733), 류연(1683~1761), 류정운(1702~1775) 등의 효자를 배출하며 22세대를 이어 화순 동면에 세거하고 있다. 종가는 서성제 위의 아름다운 환산정과 언동사, 승유재 등을 보존하며 문(文)과 충(忠)을 숭상하던 선조의 정신 계승에 힘쓰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환산정 전경
환산정
환산정 현판
승유재 현판
승유재
환산정 앞 보호수 소나무 수령 350년
류함선생유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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