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일(남도일보 대기자)

박준일(남도일보 대기자)

대권 가도에서 5·18묘역 참배를 놓고 난데없이 여야 후보들은 물론 참모 진영의 난타전이 이어지고 있다. 한 후보가 묘비를 어루만지며 울먹이자 이틀 후 다른 후보가 찾아와 ‘더러운 손’이라며 그 묘비를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그들은 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현충원도 아니고 유독 5·18묘역에서 정치 메시지를 던지며 거친 말을 쏟아내는 걸까. 도대체 대선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길래 5·18묘역을 선전장으로 삼는 걸까. 대권을 꿈꾸는 후보들은 광주를 찾으면 어김없이 5·18묘역 참배로 일정을 시작하고 광주정신을 얘기하며 지지를 호소한다. 모두 나름의 셈법이 있겠지만 정작 5·18을 가슴에 안고 사는 광주사람들에게는 볼썽사납게만 느껴진다.

대선 후보들이 5·18 묘역을 정치 이벤트의 소재로 삼는 것은 호남의 민심을 얻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그것은 5·18정신을 상품화하고 희석시키는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

5·18묘역이 국립묘지로 자리하기까지는 20년이 넘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현 묘역으로 이전하고 2002년 국립묘지로 승격하기까지 인근 구 묘역은 이 나라 민주화의 성지였다.

지금부터 41년 전인 1980년 5·18 당시 광주시 북구 운정동 산46번지에 자리한 시립공원묘지의 한 모퉁이인 3묘역에는 5월 27일 새벽까지 계엄군에 의해 숨진 시신 중 126구가 5월 29일 시청 청소차에 실려 와 묻혔다. 3묘역은 당시 야산 950여 평을 급조한 곳이었다. 한 맺힌 주검이 묻힌 망월동은 행정구역상 남녘 광주의 한 지방을 뜻하는 단순한 고유명사에 머물지 않고 보통명사로서의 망월, 민주와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영원한 망월로 자리매김 됐다. 그런데 이 시립공원묘지 3묘역에 묻힌 5·18희생자 묘 상당수가 제각기 다른 지역으로 분산, 이장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정확히 83년부터 86년까지 사이에 27구의 5·18희생자 묘가 망월 묘역을 떠났다.

그 후 그 빈자리에 80년 당시, 5월 광주민중항쟁을 주도한 혐의로 수배 검거돼 옥중 단식 투쟁을 하던 중 82년 10월 12일 광주교도소에서 숨진 전남대 총학생회장 고 박관현을 비롯해 6월항쟁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 고 이한열이 안장됐다. 또 양영진, 조성만, 이내창, 이철규, 표정두, 최덕수, 신영일, 기종도 등 민주열사들의 묘도 이곳에 있다. 그리고 국립묘지 승격을 전후해 우여곡절 끝에 5·18 묘역을 떠났던 희생자들의 묘가 다시 돌아왔다.

5·18 희생자들이 망월 묘역을 떠난 과정에는 ‘전남지역개발협의회’라는 급조된 관변 단체의 망월묘역 폐쇄 공작이 있었다. 이 관변 단체는 정보기관과 함께 5공 정권의 대리자로서, 망월묘역에 묻힌 5·18 희생자 묘를 분산 이장시켰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안고 있는 5·18묘역에서 대선 후보들의 5·18에 대한 역사 인식과 과거 행적을 검증하는 절차는 필요 하겠지만 참배를 놓고 누군 되고 누군 안되고 하는 식은 아니다고 본다. 광주학살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는 전두환의 쿠데타 세력이 아니라면 계엄군으로 동원된 그 군인들마저 참회의 기회를 주면서 정치적 편 가르기에 의해 빗장을 걸듯 참배를 시비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참배를 놓고 정치적 논란을 기열 시키는 것은 광주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지난 17일. 야권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18묘역을 찾아 묘비를 어루만지며 고개를 떨구었다. ‘광주의 한’을 언급하면서는 울먹이며 “저 스스로 아직도 이 한을 극복하자고 하는 그런 말이 나오질 않는다”고 말했다.

5·18단체 관계자들이 “대학 시절 모의재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사형을 구형한 마음이 여전한지”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방명록에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피로써 지킨 5·18정신을 이어 받아 국민과 함께 통합과 번영을 이뤄 내겠습니다”고 적었다. 여기에 여권에서 비난성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급기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김두관 의원이 19일 광주를 찾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광주정신을 모욕하고 있다. 대권후보에서 반드시 끌어내리겠다”고 했다.

그는 윤석열 후보에게 “5·18 민주묘지를 찾아 쇼를 할 것이 아니라, 무릎 꿇고 사죄를 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윤석열은 신성한 묘비에서 더러운 손을 치우라”고 했다. 이어 “악어의 눈물이 따로 없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이 검찰의 수장이었음도 기억 못하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정치판이라고 하지만 5·18 묘역을 두고서 벌어지는 이판사판식 이전투구가 짜증스럽다. 이쯤 되면 그들에게 5·18묘역은 민주화의 성지가 아니라 자신들의 선전장으로 삼는 수단이요 도구일 뿐이다. 5·18묘역이 무슨 동네북인가.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