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일(남도일보 대기자)

 

차기 대선이 8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작금의 정치 상황이 지난 1997년과 2002년 12월 치러졌던 대선판을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1997년 대선에서는 야당의 김대중 후보가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2위인 여당의 이회창 후보와 득표율은 1.6%에 불과했고 표 차는 40만 표도 되지 않았다. 50년 만에 여당에서 야당으로의 평화적 정권 교체였던 DJ 당선은 김대중·김종필의 이른바 DJP연합과 당시 여권 이인제 의원의 돌연한 탈당과 신당 창당을 통한 대선 출마로 급선회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여기에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 비리 의혹은 패인의 결정타였다.

이회창 장남과 차남 둘 다 체중미달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지지율 50%의 절대적 우위를 보였던 이회창은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으로 지지율이 급락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DJ에게 패했다.

그리고 이회창은 2002년 노무현 후보와 맞붙은 재도전에 나선 대선에서도 두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후일 대법원은 쟁점이 됐던 이른바 ‘병풍’의 첫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는 판결을 내렸다. 병풍 전체가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한 판결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내년 3월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실시된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거대양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간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에서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1997년과 2002년 이회창 후보의 대선 패인은 아들 병역 의혹 리스크가 가장 컸다면 내년 대선도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 모두 가족 리스크가 대선판을 강타하면서 그 끝이 어딘지 가늠하기 어렵다. 거대양당이 상대 후보와 가족에 대한 폭로전을 이어가면서 한 달 넘게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1997년과 2002년 대선과 닮은 꼴이다. 누구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을 만큼 진흙탕 싸움이 되고 있다.

불과 한달전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특혜의혹에 지지율이 발목을 잡히면서 윤석열 후보는 국민의힘 경선 승리 후 컨벤션 효과로 10% 포인트 이상 격차를 벌렸으나 최근 그 우위를 모두 반납했다. 특히 윤 후보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합류에도 이준석 대표 여진이 계속되면서 캠프 내홍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재명·윤석열 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 두 후보 모두 당내 경선 과정에서 대장동 특혜의혹과 고발사주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지금 보니 그것은 1라운드였다. 이재명 후보 아들의 불법도박과 성매매 의혹, 윤석열 후보 부인의 부풀리기 이력 의혹은 2라운드 격이다. 폭로전이 매일같이 언론에 도배되면서 여론조사에서 부동층이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말에 많은 대중들이 공감한다. 그럼 이재명·윤석열이 아닌 제3의 후보를 뽑으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현재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이변이 없는 한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서로 상대 진영에서 폭로한 내용을 가짜뉴스로 규정하거나 고소 고발을 남발한다. 공정과 정의, 상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민의힘에서는 윤후보의 부인 김건희씨 등판에 대해 “배우자가 나와서 꼭 같이 움직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물론 후보 아들과 부인의 리스크는 분명 결이 다르다.

대선 국면만 되면 벌어졌던 가족 잔혹사가 되풀이 되고 그 이슈가 여론을 타고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니 후보 캠프에서도 재미를 붙여 올인하는 모양새다.

언론에서 처음 문제를 제기하면 가짜뉴스 또는 과장보도로 치부하다가 실체가 드러나면 토씨가 붙은 사과를 한다. 두 후보는 가족 관련 의혹에 거듭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어정쩡한 사과의 연속이다. 임기응변식으로 현 상황을 모면하면 된다고 보는것 같다.

그러면서도 상대의 허물만 들추는 난타전은 한층 가열되고 네거티브 공방은 극에 달하고 있다. 언론은 양 후보 캠프의 폭로와 논평을 받아쓰고 확대 재생산하면서 정책이나 공약 검증은 실종됐다. 대선이 코로나19 와중에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이 또한 국민의 입장에서 불행한 일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책과 공약 대결로의 국면전환이 필요하다. 후보도 그렇고, 후보캠프도 그렇고, 언론도 폭로전 받아쓰기 그만하고 희망의 니라를 만들기 위한 더 좋은 정책과 공약을 걸러내는 역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당장 광주·전남만 보더라도 광주공항과 군 공항 이전, 전남지역 의대 설립은 20년 넘게 대선이나 지방선거 때마다 모든 후보들의 단골 공약이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런 말 한적이 있었느냐는듯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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