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석(기상청장)

박광석 기상청장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라. 추운 겨울을 지나 따사로운 볕이 들더니, 메말랐던 자연이 하나둘 깨어나고 주위가 어느새 형형색색으로 물들었다. 먼지 날리던 흙더미 속에선 키 작은 민들레가 샛노란 꽃봉오리로, 매화의 마른 가지 위로는 진분홍 꽃잎이 피어난다. 봄을 알리는 소식들로 가득하다. 추위를 이겨내고 피어나는 꽃들과 조잘조잘 들리는 새의 지저귐에서 완연한 봄을 느낀다.

기상청에서는 바람, 기온을 관측하는 것 외에도 계절을 알리는 대표적인 식물과 동물을 지정하여 언제 꽃이 개화, 만발했는지 등을 기록하는 계절관측을 실시하고 있다. 계절관측은 계절의 빠르고 늦음, 그리고 그 지역적 차이를 과학적으로 통계 분석하기 위해 실시되고 있다. 예컨대 상대적으로 따뜻한 제주도에서는 남부 내륙과 중부 지방보다 봄꽃을 일찍 볼 수 있다든지, 작년보다는 개구리나 나비가 일찍 보였다든지 등의 시점을 기록하고 자료화한다. 그렇게 수년에서 수십 년간의 자료가 쌓이게 되면 기후변화 추이를 분석하고 평년(지난 30년간의 기후의 평균적 상태를 이르는 말)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객관적인 통계 기준으로 사용될 수 있다.

계절관측의 종류에는 생물(식물, 동물)과 기후 계절관측이 있다. ‘식물계절관측’의 대상으로는 코스모스, 매화, 개나리, 벚나무 등 12종이 있고, ‘동물계절관측’은 개구리, 나비, 매미 등 9종이 있다. ‘기후계절관측’은 눈, 서리, 얼음 등 기후적 특색이 있는 기상현상을 관측하는 것이다. 현재는 총 23종 요소를 지정하여 관측하고 있다. 지정된 관측 종목, 장소, 방법 등을 지켜가며 매년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개체에 대해서 관측을 한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제는 발견하기 힘든 뱀, 종다리, 기러기는 2015년도부터 계절관측을 중단하게 되었단 점이다.

누구나 한 번쯤 지인과 벚꽃 구경을 약속한 뒤, 혹여나 비가 오거나 날이 너무 춥진 않을까 걱정해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벚나무 개화일은 언제였을까? 광주지역의 벚나무 신평년(1991년~2020년) 개화일은 3월 31일로 구평년(1981년~2010년) 보다 이틀이 당겨졌다. 서울의 벚나무 신평년 개화일은 4월 8일이다. 처마 언저리에 둥지를 트는 제비의 신평년 초견(初見)일은 4월 18일로 구평년 보다 무려 8일이나 앞당겨졌다.

‘겨울은 가고 봄날이 왔다’라는 말은 고생의 나날들이 지나간 뒤 행복할 날만이 남았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만개한 꽃들이 봄이 왔음을 전하니 여기에 모두의 행복이 더해지길 바라본다. 그리고 올해 제비를 본 날, 매미 소리를 처음 들은 날, 단풍잎이 물든 날, 흰 서리가 내려앉은 날을 기상청과 함께 기록하며 새 계절을 맞이한다면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더해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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