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원들만 탓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어느 조직이나 탈선하고 갑질하는 자들이 있다. 그렇다고 그들 때문에 착한애들마저 도매금으로 매도당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오성공은 자신이 겪었던 일을 되새겼다. 외항선 밀수품 전달책으로 차출되어 며칠 집장촌 골방에 잠복해 있을 때, 한 계집아이가 다가왔다. 눈앞에 자주 얼쩡거리니 며칠 후에는 낯익은 얼굴이 되었다.

“나 현아인데요, 모르겠어요?”

상당히 당돌한 질문이다. 갈보들 세계에서는 그 방면에 짠밥이 많거나, 얼굴이 자신있는 애들이 턱쳐들고 오꼬롬히 상대방을 쳐다보며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녀는 후자 쪽이었다.

“잘 몰겄는디요?”

오성공이 대답하자 당장 비꼬는 말이 되돌아왔다.

“나 모르면 간첩인데? 신고할까요?”

“왜 그려요. 나 책상에 엎드려 직무 중인 것 몰라요?”

“좋아요. 내가 눈여겨 보았다면 성공씨는 레벨이 있는 사람이니 신고는 참죠.”

현아는 눈이 크고, 입술이 도발적으로 도톰하고, 허리가 가는 반면에 유방이 커서 색깨나 쓰는 여자로 비쳐졌다. 브르짓드 바르도라고 해도 무방했다. 한번 보면 누구나 침을 삼킬만 했다. 그래서 저리 당당한가. 색이 넘쳐서 제 몸 추스르지 못하고 집장촌으로 흘러들어온 애들이 있었는데, 그녀도 그중 하나인 것 같았다. 그런 애들일수록 색을 미친 듯이 밝히니 인기가 많았다. 그런 신분인데 자기를 몰라본다? 이거 만만한 놈이 아니거나, 푼수 아닌가? 하고 그녀는 더 치근덕거려보려고 시비를 걸었다.

“성공씨가 고자라고 소문났던데 사실이 아니겠죠?”

“먼 소리요?”

농담 따먹기 같은 장난에 안넘어간다는 뜻으로 오성공이 뜨악하게 현아를 쳐다보았다. 그제서야 좀 무안했던지 현아가 말을 돌렸다. 아무리 이 세계에서 되바라지고 까졌다고 해도 순수한 사람 앞에서는 순수해지는 것이다.

“양담배 한 갑만 줘요. 팔말로요. 골초 언니 갖다줄 거예요.”

“담배 없승깨 나가쇼. 여기 들어오는 곳이 아니요.”

“왜 이리 매정해요. 나이도 비슷한 사람끼리…”

그녀는 비록 몸을 팔지만 일생을 맡길만한 남자를 찾고 있었다. 그중에 늦게 신입한 오성공이 눈에 잡혔다. 순박하고, 성질도 좋아보이고, 이 동네에서는 학벌도 괜찮고, 무엇보다 한 여자만을 위해 일생을 바칠 성실성이 엿보였다. 이 사람 잡으면 평생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 아버지가 하급 공무원 신세를 한탄하듯 술만 먹으면 엄마를 두둘겨팬 것을 보고 자란 그녀는 남편만은 유순하고 착한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래서 일생을 함께 할 운명적인 남자를 만나서 이곳을 떠나려 하는 것이다. 닳고 단 새끼들이 드나드는 곳이 홍등가지만 다 나쁜 종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가랑깨. 나 직무 중이여.”

“정말 나 안보여요?”

그녀가 몸을 한바퀴 빙 돌렸다. 말 그대로 잘 빠진 S라인이었다.

“시방 직무중이당깨는…”

그 말을 묵살하고 그녀가 가볍게 눈을 흘기며 그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안았다. 그녀 유방이 머리에 닿자 오성공은 아찔하니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사실 그녀의 풍만한 유방에 나가떨어지지 않는 남자들은 없었다. 그래서 그 스킬이 들어간 것이다. 과연 풍성한 그녀 유방의 유혹이 오성공의 아랫도리를 바짝 세웠다. 그것을 지우기라도 하듯 고등학교 불교반 시절 외웠던 반야심경을 속으로 외웠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 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그래도 아래가 가을 독사 대가리처럼 발딱 서있었다. 유혹에 밀려서는 안된다. 그는 다시 외었다.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하지만 청춘의 본능은 본능일 뿐이다. 아래가 아무거나 찌를 기세로 독이 올랐다. 아, 이래서 파계승이 나오는구나. 이래서 중들이 주색을 멀리하지 못하는구나. 그는 승부를 걸듯이 다시 속으로 암송했다.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 전도몽상…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그래도 소용이 없자 오성공이 벌개진 얼굴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나가랑깨!” <계속>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