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남도일보 편집국장

1907년 동경제국대학(현 동경대학) 화학과 교수인 이케다 기쿠나에(池田菊苗)는 ‘우마미(旨味)’ 성분인 L-글루탐산나트륨(MSG)을 세계 최초로 발견한다. 단맛과 신맛, 짠맛, 쓴맛 네 가지에 이은 5번째 기본 맛으로 우리 말로‘감칠맛’이다.

같은 해 설립된 스즈키 제약사는 1908년 MSG 조미료 제조특허를 따낸 뒤 ‘아지노모도(味の素)’를 다음 해 5월 20일부터 상품으로 내놨다.

이 회사는 1910년 식민지 조선의 서울과 부산에도 특약점을 내고 판매를 본격화했다. 비싼 가격에다가 원료가 뱀가루라는 헛소문이 퍼지면서 처음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1920,1930년대 만주와 중국 등 동아시아 전체를 시장권으로 확장하는 ‘맛의 제국주의’를 완성시켰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주요 신문과 잡지를 통해 “근대여성은 좋은 맛을 위해 문명의 조미료인 아지노모도를 넣는다”고 집중 부각시켰다. 현지에 최적화된 마케팅 전략은 양념을 많이 사용하지 않으면서 그럴듯하게 맛을 내야하는 냉면집과 국수집, 중국집, 국밥집 등이 공략의 대상이었다. 지역적 표적으로는 서울과 부산, 평양이었다. 서울과 부산은 인구가, 평양은 면의 고장으로서 육수와 곰국물 요리가 고려됐다.

특히 국물 요리가 많은 조선에서 감칠맛을 더하는 아지노모도는 깊은 인상을 남겼고 당시 인구가 2배 많은 일본과 매출이 비슷했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싱거운 음식에 간장을 치듯이 맛이 없을 때는 아지노모도를 넣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성장을 거듭하던 아지노모도는 1939년 가을부터 생산이 줄면서 고비를 맞는다. 원료인 대두와 소맥분 확보가 어려워진데다가 1941년부터 시작된 태평양전쟁에 따른 전시식량 통제로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결국 아지노모도는 1943년 7월 조선사무소 폐쇄에 이어 2년 후 일본이 패망하자 조선에서 완전 철수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입맛이 아지노모도에 길들여진 부유층 사람들은 암암리에 일본에서 들여온 밀수품을 찾게 됐다. 공급부족에 따라 시중에 위조제품이 유통되기까지 했다.

이런 사정을 비집고 출시된 것이 국내 조미료 1호인 ‘미원(味元)’이었다. 1955년 현 대상그룹 창업주인 고(故) 임대홍 회장이 직접 일본 조미료 공장에서 일하며 어깨 너머로 ‘글루탐산’의 제조 방법을 익히고 돌아와 부산에 동아화성공업을 설립, 1956년 6월부터 국내 생산을 시작한 결과였다. 미원은 1960년 초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아지노모도의 철수로 발생한 공백을 채웠고 1970년대까지 인기 있는 식료품으로 떠오르면서 국내 조미료 시장을 독점했다.

여기에 1953년 국내 첫 설탕 생산 기록을 갖고 있던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이 1963년 ‘미풍(味豊)’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나섰다. 이후 미원과 미풍의 주도권 경쟁은 날로 치열해졌고 경품경쟁에서도 불꽃이 튀었다. 출혈 경쟁으로 치닫자 보다 못한 정부가 직접 제지하고 나설 정도였다.

공교롭게도 미원의 임 회장은 전북 정읍 출신이고 제일제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은 경남 의령 출신이어서 은연 중 영·호남 출신 기업인끼리 자존심 대결을 한 모양새가 돼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다. 1969년 제일제당은 조미료의 원조 격인 아지노모도사와 기술제휴 후 미원보다 큰 규모의 자동화 공장을 가동시켜 역전을 노렸지만 ‘조미료 하면 곧 미원’으로 각인된 소비자 인식을 깨지는 못했다. 미원은 이 같은 여세를 몰아1970년대까지 조미료 시장 1위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었다.

조미료 시장 제패에 대한 제일제당의 집념의 정도는 이병철 회장이 1986년 출간한 자서전 ‘호암자전(虎巖自傳)’에서 “인생에서 뜻대로 안 되는 것 세 가지가 자식과 골프, 미원”이라고 회고한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1975년 제일제당은 배우 김혜자를 모델로 한 ‘다시다’를 내놓아 전세 뒤집기를 시도했고 대상은 여기에 맞서 1982년 종합조미료 ‘쇠고기 맛나’로 맞불을 놓았다. 판정은 조미료 업계 1위 자리 교체였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졌던 미원과 미풍 간 30년 조미료 전쟁은 1988년 안성기, 이혜영 주연의 영화‘성공시대’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조미료 전쟁을 벌였던 삼성과 대상은 1998년 혼사를 통해 오랜 앙숙에서 사돈으로 관계가 급반전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고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장녀 임세령씨와 연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2009년 2월 이들이 결별하면서 양쪽 관계는 원점으로 회귀했다. 결과적으로 11년 만에 감칠맛 아닌 씁쓸한 뒷맛을 남긴 셈이다.

정치권에서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고 하는 말은 진리로 통한다. 재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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