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공은 다른 방으로 인계되었다. 우중충한 사무실에 해말쑥한 사람이 그를 맞았다. 그는 다른 사람과 달리 하얀 와아샤쓰에 붉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꽃이 수더분하게 피어 꽂혀있는 화병이 놓여 있었다. 사무실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는 꽃을 사랑하는 정서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있다.

“나는 장이다. 수사를 책임지는 장 과장이다. 수사책임자이기 이전에 나는 시인이다. ‘청춘은 무진장 아름다워’, ‘청춘은 무지개니 꿈을 활짝 펼쳐라’ ‘아침 이슬 같은 청초함이여, 영원하여라’ 이런 시를 쓰고 있다. 아주 감수성 예민한 시다. 너는 그런 나를 만난 것을 대단한 축복으로 알아라. 그러므로 나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러면 출세길이 환히 열릴 수 있다. 알겠나?”

오성공이 출세하기 위해 서울에 기어들었다는 것을 그는 빤히 안다는 투였다. 하긴 시골 청년들이 너도나도 서울로 모여드는 목적이 야망을 달성하려는 것이었으므로 그 말은 누구에게 적용되는 말이기도 했다.

“서울로 올라온 고향 청년들과 꾸준히 교류하고 있느냐?”

“네?”

오성공이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물었다.

“그들과 긴밀하게 지내느냐 말이다.”

“긴밀하진 못하지만 찾아보면 꽤 있을 것이누만요.”

“그들은 주로 어디서 근무하느냐.”

“팽야 밑바닥이자라우. 평화시장에서 옷 맹그는 일이나, 직공, 그리고 식당 점원으로 있고, 그중 잘나가는 애는 술집 주방장도 있고, 맥주집 상무도 있지라우.”

“그런 친구들 말고,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친구들 말이다.”

“그것도 꽤 있지라우.”

오성공은 그 부분에선 좀 과장해서 말했다. 그는 그새 뻐기는 데 입을 털고 사는 기술에 익숙해졌다. 서울생활이 그렇게 뻥치게 살도록 하였다. 먹물 먹은 애들을 많이 안다는 것은 그의 사회적 신분을 높여주는 수단도 된다.

“그럼 되었다. 그들의 명단을 적어서 나에게 달라.”

“왜요?”

“너의 친구 교류 상황을 알아야 할 일이 있다. 그리고 나에게 왜냐고 묻지 마라. 여기선 피의자가 왜냐고 묻는 곳이 아니다. 알겠나”

그가 눈을 부라렸다. 여차하면 또 맞을까 싶어서 그가 얼른 대답했다.

“넵, 알겠습니다.”

이 자들은 점잖다가도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는 성미들인지라 조심에 조심을 기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의 동선을 알려줄 수 있겠느냐?”

오성공은 그들 명단을 파악해 알려주면 잡아다가 족치려고 그러는 것 아닌가? 하고 의문을 품었다. 그런데 그가 다르게 말했다.

“응, 그렇지. 사실 그들의 동태를 살피려면 비용이 든다 이거지? 물론 맨입으로 작업을 할 수야 없지. 활동비를 넉넉히 지급해주마. 택시비와 식사비, 그리고 일당을 줄 것이다. 실적이 좋으면 성과급도 줄 것이다. 우선 십만원 줄까?”

십만원이라면 5급 공무원 두세 달 월급이 되는 큰돈이다. 오성공이 재빨리 대답했다.

“그런 일이라면 할만 하겠구만요.”

고향 친구들 동태를 파악하고, 동선을 체크하는 일이야말로 쉬운 죽먹기다. 장 과장이 알 듯 말 듯 야릇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헌데 니가 하는 일은 어떤 누구도 알면 안된다. 밀정 일이 아니지만 밀정처럼 뽀록이 나면 니가 먼저 요원에게 가는 거야. 그만큼 막중하고 엄중한 일이야. 알겠나?”

“아내한테도 비밀로 하라는 것인가요?”

“니가 벌써 결혼했어?”

“결혼식은 안올렸지만 동거하고 있어라우.”

“너 앞으로 전라도 말씨를 쓰면 안된다. 인테리전스란 세련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역할이다. 가능한 한 도시적 풍모를 풍겨야 한다. 촌스럽지만 훈련하면 좋아질 것이다. 생김새 하나는 신성일 동생쯤 되지 않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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