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닙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디 무슨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요.”

“그럼 됐다. 혹시 물들까 싶어서 미리 짱 박아두니 내 말 잘 들어라. 김대중 도당은 이른바 ‘박정희 군사독재 파쇼 타도’를 위해 ‘파타투(파쇼타도투쟁위원회)’를 결성해 서울 항쟁을 주도하고, 인천역과 부평역 광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면서 경기도 광주대단지 성남출장소로 원정나가 노동자들을 충동질하고, 공공시설물을 파괴하고 있다. 민족해방과 민중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노동자 계급이 정치적 중심이 되며, 노동자들의 투쟁을 발전시켜 정권을 잡겠다고 주장한다. 가당치나 한 일인가. 이것들은 또 미국이 행하고 있는 동아시아 혁명의 확대 발전을 저지하기 위해 발버둥치는데, 미 제국주의자와 대한민국이 자본가와 친일 관료 등 반동적 세력들과 연합해 민중을 압살하고 있다고 모략한다. 그리하여 대중경제 체제와 함께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노동자 농민의 혁명투쟁을 가일층 배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은 갈수록 어마무시해지고 있었다. 무식한 놈 앞에서 한껏 현학취미를 발현하는 것 같았다. 오성공은 꿈을 꾸는지, 구름 위에 있는지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의식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듣기만 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섞갈렸다. 그럴수록 장 과장은 더 자신감을 얻고 떠벌이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의 혁명이란 뭐냐? 바로 공산 사회주의혁명을 의미한다. 월남 정권이 부패해서 무너지기 직전인데, 위대한 미국이 버텨주고 있으나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월남이 무너지면 동남아 전체가 도미노처럼 공산화된다. 그런다고 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바로 김일성 치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제 우리는 다 죽었다고 복창해야 한다. 김대중 일파와 그 추종세력에 따르면, 우익 반동세력은 미제국주의의 보호와 지원 아래 친미정권인 이승만 독재정권부터 박정희 군사파쇼 정권을 지지했으나 이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불굴의 무장 투쟁으로 민중정권을 세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권을 김일성에게 헌납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경기도 광주대단지 주민 폭동으로 현실화 되었다. 거듭 말하거니와, 그들은 남한의 독점 자본가는 노동자 계급을 착취해 노예화시키고, 그 고통을 더욱 참을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며, 그러므로 격렬하게 노동자투쟁을 벌여 판을 엎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권력의 비호 아래 자본가가 노동자에 대해 무제한 착취를 감행하도록 방치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 반역도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충동질하여 계급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 실험장이 경기도 광주대단지 폭동 현장이다. 두렵고 무섭지 않느냐?”

“무섭습니다.”

“그런데도 그 일원이 되어서 철딱서니 없이 어울렸단 말이냐?”

“생각이 짧았습니다.”

“너의 친구가 주동자라고 말할 수 없겠지? 그와 접선한 내용을 밝혀라. 이것부터 너의 애국관을 증명해보여야 한다.”

“접선 증명이라니요?”

“과격한 데모를 주도하고, 진압 경찰과 용역들을 몽둥이로 저격한 김구택이라고 했던가? 그놈이 김대중의 사주를 받고, 난리를 쳤다는 것을 자백했다. 너는 그걸 몰랐더냐?”

“몰랐습니다.”

오성공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배신감을 느꼈다. 아는 체하고,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자가 오성공 몰래 암약했다는 것이 배신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 못된 여자, 옳지, 김인자라고 했지? 고년의 앙칼진 메가폰 선동 시위는 꼴불견이었다. 그런 년은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찍어놔야 할 것이다.”

결국 날벼락이 친구 김구택과 애인 김인자에게 떨어졌다.

“그 애들은 판자촌에서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친 일밖에 없습니다.”

대뜸 오성공이 변명했다.

“이 새끼 고향 까마귀라고 동정하나? 그렇다면, 그들이 갇힌 곳으로 가보자.”

장 과장이 부하를 부르더니 오성공을 수행하도록 하고, 그가 앞서 복도 끝쪽의 취조실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시커먼 동체가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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