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관(남도일보 중·서부취재본부장)

김우관 남도일보 중·서부취재본부장

남도는 지금 황금 들녘으로 물들어 있다. 태풍이 2개 정도 휩쓸고 갔지만 다행히도 남도 들판에는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대풍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올해도 풍년농사는 어느정도 예견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확한 생산량은 통계청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지난해보다 재배면적이 소폭 줄었음에도 생산량은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전망이 현재로서는 우세하다.

그런데도 풍년농사에 덩실덩실 춤을 춰야 할 농민들의 마음은 기쁨보다는 되레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쌀값이 지난 1977년 본격적인 통계 조사가 실시된 이래 45년만에 최대 폭으로 떨어져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난해부터 이같은 조짐을 지적했지만 정부의 안이한 정책으로 적정가격 설정과 예측이 실패하면서 농민들의 대정부 항의시위가 끊이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자식처럼 애지중지 지은 벼를 갈아엎으며 농정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 규명에 나서지만 십수년째 되풀이되는 연례행사로 치부될 정도다. 필자가 초년병 기자시절이던 1990년대 초반부터 수확철이면 으레껏 농촌현장에서 빚어졌던 야적시위 현장은 시위 주체만 바뀌었을뿐 3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똑같은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정부의 농정정책이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웃픈(웃기면서 슬픈)현실’의 단적인 사례다.

올해 쌀값 폭락 투쟁에 농민과 농민단체는 물론 김영록 전남지사를 비롯한 쌀 주산지 8개 도지사들까지 가세해 힘을 한껏 실리는 분위기다. 이들은 지난달 15일 국회에서 ‘쌀값 안정대책 마련 촉구’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도지사들은 “쌀 농사가 흔들리면 농민 삶은 물론 식량주권도 흔들릴수 밖에 없는 만큼 쌀값 안정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쌀 주산지 8개 도지사가 한자리에 모여 정부를 향해 쌀값 안정대책 마련을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통계청 자료(9월 25일 기준)에 따르면 산지 쌀값(20㎏들이 도정곡)은 4만393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이맘때 5만3천816원에 비해 24.9% 폭락했다. ‘농사를 지을수록 손해만 본다’는 농민들의 속설이 단순한 푸념이 아님을 보여주는 수치다.

더불어민주당 서삼석 의원(영암·무안·신안)이 최근 전국쌀생산자협회‘2022년 생산비 조사자료’를 분석한 결과 농민이 200평 벼 농사를 지었을 경우, 16만4천750원 가량의 손실이 추정된다고 밝혔다. 올해 전국적으로 벼 재배면적 72만7천158㏊로 환산하면 농가 손실은 1조8천120억원에 달한다. 이를 전남도만 따져보면 2021년산 쌀 생산액이 2조2천억원 가량 됐는데 올해는 5천600억원이 사라질 전망이다.

반면 생산비는 지난해 52만9천500원에 비해 25%가량 상승했다. 쌀 1㎏ 생산비가 2천83원인데 반해 산지 쌀값은 ㎏당 2천36원에 불과해 47원 손해를 본다는 결론이다. 결국 100g 밥 한공기가 204원 헐값에 팔린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투입된 비용 208원도 못 건진 셈이다.

정부가 수입산 쌀을 시장에 유통해 쌀값 폭락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나주·화순)이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로부터 받은 자료 결과, 지난해 밥쌀용 수입쌀 4만8천718t이 공매입찰 물량으로 나와 이중 4만3천138t(88.5%)이 낙찰됐다. 올해 역시 8월까지 2만1천250t이 공매입찰 물량으로 나와 이 중 81.4%인 1만7천297t이 시중에 유통된 것으로 확인됐다. 폭락 쌀값을 잡기위해 올해에만 세차례 이뤄진 시장격리에도 수입산 쌀은 버젓이 유통됐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다.

정부가 뒤늦게 쌀값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일으켜 세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올들어 쌀 37만t을 시장격리와 함께 공공비축용 햅쌀 45만t을 매입키로 했으나 이미 재고가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효과가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문제는 쌀값 하락세가 내년까지 이어질수 있다는 점이다. 재고량이 쌓이면 가격안정은 기대하기 힘들다.

앞으로도 수 년간 쌀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많은 과잉 생산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어서 현재와 같은 주먹구구식 정부 대책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급자족이 가능한 쌀마저 수급 불균형 현상이 생기면 돌이킬 수 없는 식량위기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지적에 정부는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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