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영(정치부 차장)

정세영 남도일보 정치부 차장

무려 156명.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서 소중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 수다.

부상자까지 포함하면 352명의 사상자가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발생했다. 희생자 가운데 20대는 104명에 달한다. 풋풋한 20대 청춘들이 미처 꽃도 펴 보지 못한 채 세상과 작별했다. 믿기지 않은, 믿고 싶지 않은 일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영업제한과 야외마스크 해제가 풀린 뒤 처음 맞은 핼러윈데이에 십만여 명의 인파가 좁은 이태원 거리로 몰려들었고 군중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포개진 채 생을 마감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엔 미래에 대한 찬란한 꿈의 상흔, 남겨진 가족, 슬픔과 분노만 남아 있을 뿐이다. 첫 취직의 기쁨에 친구들에게 ‘취업턱’을 내려고 이태원에 간 청년, 비정규직 은행원으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던 20대 은행원. 축제의 한복판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애달픈 사연이 대한민국을 울린다. 생때같은 자식을 떠나 보낸 부모들의 절규가 머릿 속에 맴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돌이켜 보면 결국 사회 안전관리시스템이 부른 총체적 부실로 인한 ‘인재(人災)’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위기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됐고 시민들의 신고도 쇄도했지만 공권력의 대응과 조치가 안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핼러윈을 앞둔 주말 밤 10만 명이 모일 것을 몇 주 전부터 예측했지만 경찰, 구청 등 관계기관의 사전대비는 미흡했고 군중을 통제하는 기동대는 현장에 없었다.

적극 대응해야 하는 정부 지휘부는 뒤늦게서야 사태를 인지하며 구멍 뚫린 재난 보고와 대응체계가 고스란히 노출됐다. 참사는 오후 10시 15분 시작됐지만 이상민 행안부 장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윤희근 경찰청장 등은 1시간 뒤에서야 보고를 받았다. 현장 상황을 신속히 파악해야 하는 서울경찰청 112 당직상황관리관은 참사 당시 근무지를 이탈해 자신의 사무실에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1994년 502명의 목숨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304명의 희생자를 낸 2014년 세월호 사고까지. 안일한 대처로 대규모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외치는 정부의 ‘재발방지’약속은 이번에도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후진국형 참사가 발생한 뒤에서야 뒤늦게 책임소재를 따지고 재난안전망 구축을 재정비하는 국가의 모습이 개탄스럽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6항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이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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