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민(법무법인 맥 변호사)

송진민 법무법인 맥 변호사

변호사 생활을 하다 보면 의뢰인들로부터 많은 요청 사항을 듣게 된다. 요청 사항은 가지각색이지만, 의뢰인 대부분이 공통으로 부탁하는 내용이 있다. 바로 “쉽게 설명해달라”는 것이다. 이런 요청을 받게 되면 당사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만, 의뢰인이 법률 용어의 의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결국 유사한 단어로 설명을 대신하는 때도 종종 발생한다.

실제로 법률 용어는 매우 어렵다. 용어 대부분이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고, 일상생활에서 접하기 어려운 단어가 많으며, 일상생활에서의 용례와 다르게 사용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나치게 어려운 법률 용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왔다. 법무부는 2017년부터 민법의 한글화 작업을 위한 TF팀을 꾸려 법률 용어 개선에 힘써왔다. 그 과정에서 일본식 표현으로 의미가 지나치게 어렵다고 지적되어왔던 ‘최고(催告)’, ‘궁박(窮迫)’, ‘해태(懈怠)’, ‘요(要)하다’와 같은 민법 용어를 쉬운 한글식 표현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법률과 일반 시민들의 관계는 좀처럼 가까워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어려운 법률 용어 각각의 의미를 아는 것만으로 법률 용어를 이용해 작성된 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법률 용어를 이용해 작성된 글은 대부분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법률 용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관점에서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판결문’이다. 판결문은 엄격히 정해진 형식에 따라 작성되고, 사용하는 용어 또한 법률적으로 가장 정확하게 의미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판결문은 당사자들의 주장과 제출한 증거 중에서 법률적으로 의미 있는 것을 선별하여 함축적으로 작성되는 경우가 많아, 법률전문가의 도움 없이 판결문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한 재판부가 당사자를 위해 ‘이지 리드(Easy-Read) 방식’으로 쉽게 쓴 판결문을 내놓으면서 ‘판결문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라는 통념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 부장판사)는 청각장애인인 A 씨가 서울 강동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불합격처분 취소소송’에서 당사자인 A 씨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지 리드 방식’으로 판결문을 작성했다.

‘이지 리드 방식’이란 복잡한 글을 읽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활용되는 문서 작성 방법으로, 한 문장에 하나의 동사와 10∼15개 이하의 단어만을 사용하여 문장을 쉽고 간결하게 작성하는 방법을 말한다.

실제로 ‘이지 리드 방식’은 해외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방법으로, 발달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들처럼 복잡한 글을 읽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공공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공공 부문에서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는 문서 작성 방법이다.

국내의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을 당사자로 하는 근로계약서나 공공 문서에 ‘이지 리드 방식’을 도입해 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성과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꾸준히 지적해 왔는데, 법원이 정부나 기업체보다 앞서 ‘이지 리드 방식’을 채택하여 판결문을 작성하는 놀라운 시도를 한 것이다.

‘이지 리드 판결문’을 작성한 재판부는 장애인 권리협약과 UN의 권고의견, 그리고 원고의 요청에 근거해 판결문의 엄밀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쉽게 판결 이유를 작성하도록 노력했다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라는 문구 뒤에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라는 말을 삽입해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고, 당사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과 도표를 판결문에 삽입하거나 판결 이유 앞부분에 쉽게 쓴 요약 글을 넣는 등의 방법으로 최대한 쉽게 판결문을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언론을 통해 위와 같은 소식이 알려진 뒤 법조인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재판부의 시도와 노력에 찬사와 격려를 보내고 있다. 단순히 판결문을 쉽게 썼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패소한 이유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재판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가 작성한 최초의 ‘이지 리드 판결문’을 받아든 당사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비록 결과는 차가웠지만, 당사자를 위한 재판부의 노력과 따뜻한 마음은 분명 전달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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