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민(법무법인 맥 변호사)

 

송진민 법무법인 맥 변호사

2016년에 개봉한 영화 ‘검사외전’은 97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 ‘검사외전’에 등장하는 악역 ‘우종길(이성민 분)’은 차장검사 출신의 정치인이다. 우종길은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검찰에서 수사를 받던 피의자를 살해하고, 수사 담당 검사인 ‘변재욱(황정민 분)’에게 누명을 씌운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징역 15년형을 살게 된 변재욱은 감옥 안에서 진실을 알게 되며 복수를 꿈꾸고, 결국 감옥에서 만난 사기꾼 ‘한치원(강동원 분)’과 팀을 이뤄 살인사건의 실제 범인이 우종길이라는 사실을 법정에서 밝혀낸다.

영화 ‘검사외전’에서 주인공 변재욱과 한치원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증거는 ‘녹음파일’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우종길이 실제 범인임을 밝히는 증거 역시 우종길의 자백이 담긴 녹음파일이다. 이처럼 자백이 담긴 녹음파일로 범죄자를 처단하는 장면은 범죄 영화의 단골 장면이다. 그런데 영화에만 등장할 것 같은 이런 장면이 현실에서도 등장했다. 범죄자가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범죄 사실을 자백한 것이다.

SBS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싶다’는 ‘나는 살인 교사범이다-제주 이 변호사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던 ‘제주도 변호사 살인사건’을 다루는 내용의 방송을 했다. 방송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였다. 제보자인 A 씨가 ‘그것이 알고 싶다’ PD와의 인터뷰에서 이 변호사 살인은 폭력 조직이 지시한 것이며, 자신은 이 변호사 살인의 공범이라는 고백을 한 것이다.

A 씨는 이 변호사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범행을 자백한 것이었다. 그런데 사건은 A 씨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에 따르면 범죄행위를 한 사람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그 기간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는데, A 씨가 오랫동안 외국에 체류한 사실이 있어 아직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은 A 씨의 자백이 담긴 방송 녹화 파일을 증거로 A 씨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A 씨에 대한 기소 사실이 알려지자 대중들은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면서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을 향한 칭찬을 쏟아냈고, 이 변호사 살인사건의 진범이 처벌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은 A 씨의 범죄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이다. 대법원(2부, 주심 천대엽 대법관)은 “A 씨가 공범으로 지목한 사람들이 이미 모두 사망하여 A 씨의 진술의 신빙성 확인이 애초에 불가능하고, A 씨의 진술에 부합하는 다른 증거가 전혀 없다”면서 징역 12년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으로 되돌려보냈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단은 형사소송법 제310조에 따른 것이다. 형사소송법 제310조는 이른바 ‘자백 보강 법칙’이라고 불리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그 내용으로 하는데,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의 증거인 때에는 자백만을 증거로 삼아 유죄를 선고할 수 없고 자백을 보충하는 증거, 즉 ‘보강증거’가 있는 경우에만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백 보강 법칙’은 자백편중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방지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만약 자백만으로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면 수사기관은 다른 증거를 찾기보다 피의자의 자백을 얻어내는 데에만 노력을 쏟게 될 것이고, 자백을 얻어내는 과정에서 피의자에 대한 가혹행위 등 인권유린 행위가 이루어질 우려가 있으므로,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고자 자백 이외에 보강증거를 요구하는 것이다.

A 씨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에 대해 여론은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형사법의 대원칙인 ‘자백 보강 법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점을 천명하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어 보인다.

다시 ‘검사외전’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영화 속에서 변재욱은 우종길이 자신의 범죄를 자백하는 내용이 담긴 녹음을 법정에서 재생한다. 현실이라면 위 녹음파일 때문에 우종길은 처벌을 받게 될까? 녹음파일 이외에 다른 증거가 없다면 A 씨와 마찬가지로 우종길에게도 무죄가 선고될 것이다. 자백한 범인을 처벌하는 것, 자백만으로 처벌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 무엇이 정의에 더 가까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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