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동(기상청장)

 

유희동 기상청장

“봄이 왔다. 새들은 즐거운 노래로 인사를 하고, 시냇물은 부드럽게 속삭이며 흐른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천둥과 번개가 소란을 피운다. 어느덧 구름이 걷히고, 새들은 다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탈리아 작곡가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의 1악장을 표현한 소네트(sonnet, 짧은 정형시의 하나)이다. ‘사계’는 새 계절이 찾아올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연주곡으로, 제법 따뜻한 공기와 눈부신 햇살이 우리를 반기고 봄을 알리는 흙내음이 코끝을 스쳐올 때면 자연스럽게 ‘봄’의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된다. 봄을 노래하는 선율을 흥얼대며 밖으로 나가 풍경을 둘러보면, 여기저기에 꽃망울이 피어오르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계곡물이 녹아 흐르며 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절기상 봄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입춘이다. 올해 입춘은 2월 4일이었다. 하지만 이때를 봄의 시작으로 보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봄이라고 하기에는 기온이 너무 낮고, 일부 지방에는 폭설까지도 내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봄의 시작을 언제로 생각할까? 많은 이들이 만물이 깨어나는 경칩과 함께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을 봄의 시작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따른 지속적인 기온상승 추세로, 최근 30년(1991~2020년)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12.8℃로 이전 평년값(1981~2010년)보다 0.3℃ 상승했다. 심지어 10년 평균 기온으로 보면 1980년대보다 2010년대가 0.9℃ 상승하면서, 실제로 봄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기상학적으로는 봄을 일평균기온이 5℃ 이상 올라간 후 다시 떨어지지 않는 첫날로 정의한다. 전국 평균 6개 지점에 대한 과거 평년(1981~2010년) 봄의 시작은 3월 7일이었다. 그러나 현재 평년(1991~2020년) 봄의 시작은 이보다 6일 앞당겨진 3월 1일로 나타났다. 특히 광주·전남의 경우 이전 평년의 봄의 시작은 3월 4일이었으나, 현재 평년 봄의 시작은 2월 27일로 나타났다. 2월에 이미 봄이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어쩌면 앞으로는 ‘춘삼월’이라는 말이 무색해질지도 모르겠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점점 상승하고 봄이 빨라지고 있다지만, 매년 이 시기에는 한기를 동반한 대륙고기압이 빠른 속도로 내려오면서 매서운 추위와 함께 눈까지 내리는 꽃샘추위가 찾아온다. 온화한 봄기운이 이어지는 와중에 갑작스레 찾아오는 추위는 한겨울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진정한 봄은 언제일까? 비발디의 ‘봄’ 1악장이 우리나라의 봄 날씨를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움츠렸던 만물이 생동감을 가지고 모든 것들의 시작을 알리지만,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꽃샘추위를 견디고 꽃을 피워내는 봄꽃처럼 깜짝 추위를 지나야만 진정한 봄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어느새 3월, 자연의 속삭임과 새 학기를 맞은 아이들의 재잘거림, 봄을 맞이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분주함 속에서도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면, 괜스레 마음이 설레온다면, 이미 봄은 시작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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