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호남대학교 작업치료학과 교수)

 

김은성 호남대학교 작업치료학과 교수

한 학생이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연구실을 찾았다. 미리 약속 시간을 잡으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상담을 요청한다는 만남의 목적을 알려줬었던지라 나름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매년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는 학생들을 숱하게 만나온 필자로서는 이들의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지만 필자를 찾는 학생들 각자는 나름의 고민이 가장 크고 깊을 것이다. 그래도 자기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가히 높게 칭할만하다. ‘그냥 시간 흐르는대로’, ‘그저 주변에서 시키는대로’하면 살아지겠지 라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필자가 느끼는 하나의 새로운 현상은 자기 의사표현은 물론 자기주장이 강하다고 느껴지는 이들이 의외로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오늘은 청바지를 입을지, 원피스를 입을지부터 점심에는 짜장면을 먹을 것인지, 짬뽕을 먹을 것인지, 그리고 저녁에는 운동을 나갈 것인지 집에서 쉴 것인지까지 선택해야할 순간에 직면한다. 흔히 친구들과 점심 메뉴를 고르면서 나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결정장애’를 운운하며 살짝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면서도 비장하기 그지없다.

선택을 지나치게 망설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결정장애’라는 용어가 새로 생겼고 이와 유사한 의미로는 ‘햄릿 증후군’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주인공이 결정하지 못하고 갈등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증후군이라고해서 병으로 진단하지는 않지만 몸에 배어버린 습관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유독 선택을 어려워하는 이들의 이유를 생각해보니 ‘경험의 부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의견에 따라 움직였거나 그렇게 강요되었다면 무언가를 결정하고 그 결정을 확신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낯선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당연히 불안하고 타인에게 의지하는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면에서는 하루에도 몇번씩 바뀌는 정보의 바다에서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진위여부를 밝혀야 하다보니 혼란이 가중되어 결정 행위가 어려운 것도 있다. 이렇게 보면 결정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들이 늘어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결정행위에 익숙하지 않은 성장과정, 광범위한 선택의 폭, 거기에 실패하고 싶지 않은 완벽한 선택에의 욕구까지 합쳐져 선택의 불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에게 선택의 칼자루를 쥐어주는 학생들에게 슬며시 판단을 보류하고 그 몫을 다시 넘겨준다. 그래야만 그들이 사소한 일에서부터 선택할 수 있는 경험과 그에 따른 책임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대 잊지 않고 덧붙이는 말이 있다.

“모든 선택에 정답은 없어요. 단지, 조금 더 나은 선택이 있을 뿐이예요. 그리고 한번 선택한 것은 그것이 잘한 일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믿고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결정의 어려움이 있는 이들이 선택을 타인에게 넘기려고 하는 것은 그 선택이 혹여나 잘못 되었을 때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두려움을 회피하고자 함이다. 하지만 이 세상이 정답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듯 그 선택을 쥐고 어떻게 헤쳐나가느냐에 달려있다.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아주 단순한, 오늘 할 일을 미룰지 말지를 고민해서 선택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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