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제(남도일보 대기자)

 

김갑제 남도일보 대기자

상앙은 법가의 계통을 잇는 중국 전국시대의 정치가이다. 위(衛)나라 왕의 서자로 태어났으나 출세를 위해 진(秦)나라로 건너가 등용되었다.

늘 준법을 강조했던 그는 진나라 왕 효공의 신임을 받아 법령과 제도를 개혁하고 부국강병을 꾀했다.

이때 상앙이 만든 법은 엄벌주의와 연좌제, 밀고의 장려, 신상필벌(信賞必罰) 등 가혹한 법률 지상주의가 뼈대였다. 모든 사항을 법으로 세밀히 규정하여 백성의 일거수일투족에 이르기까지 법률의 지배를 받게 했다. 그가 제정한 법에는 부자(父子)와 형제가 한방에서 기거하는 것마저 금지했는데, 나라에 대한 불평불만이나 유언비어를 만들어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새로운 법령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나자 진나라는 질서가 잡혀갔다. 길에서 남의 물건을 주워가는 사람도 없고, 산적이 없어졌으며, 개인끼리의 싸움은 서로 피하되 나라를 위한 전쟁에 임해서는 모두 용감했다. 이렇게 전국 방방곡곡이 잘 다스려졌다.

그러나 상앙은 법에 반대하는 사람은 물론이려니와, 법을 찬양하는 사람마저 처벌함으로써 법에 대한 논의 자체를 금지했다. 그저 아무 소리 말고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이었다.

효공이 죽기 5개월 전, 상앙은 우연히 조량(趙良)이란 사람을 만났다. 조량은 자신이 ‘바른 말을 하더라도 나무라지 않겠다’는 상앙의 다짐을 받고 나서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제가 생각건대 상군의 위태로움이 아침이슬과도 같은데, 오히려 수명을 더하시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차라리 봉지(封地·제후로 봉하여 내어준 토지)로 받은 상(商) 땅의 열다섯 고을을 반납하고 시골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시는 것이 상책인가 하옵니다.”

그러나 상앙은 조량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날로부터 5개월 만에 효공이 죽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곧 혜문왕이다.

혜문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관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상앙이 사직하고 상 땅으로 돌아가는데 그의 행렬은 어느 제후에 못지않았고, 아직 그의 세력을 두려워한 대신들이 그를 전송하느라 조정이 텅 비다시피했다. 놀란 혜문왕은 이 기회에 상앙을 제거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군대를 보내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자신에게 체포령이 떨어진 것을 안 상앙은 급히 도망가다가 관하의 객사에서 하룻밤 머물기를 청했다. 그러나 그가 상앙임을 모른 객사의 관리들은 거절했다.

“상군의 법률에 보면, 여행권이 없는 자를 유숙하게 하면 벌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상앙은 속으로 ‘아, 내가 만든 법률의 폐단이 이 지경에까지 이른 줄은 몰랐구나!’ 하며 탄식했다.

상앙은 그 길로 위나라의 국경을 넘었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상앙이 자기 나라의 군사를 쳐부순 데 대해 원망하고 있던 터라, 그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진나라로 추방했다. 상앙은 결국 체포되고, 혜문왕은 상앙을 거열 즉, 두 대의 우마차에 나누어 묶어놓고 각각 반대 방향으로 말을 몰아 몸을 찢어 죽이는 무시무시한 형벌로 처형했다. 그리고 그 시신을 여러 사람에게 돌려보게 했고, 상앙의 일가까지 몰살했다. 사람들은 상앙을 ‘자신이 만든 법률에 의해 죽은 자’라고 조롱했다.

하지만 진나라는 상앙이 쌓아올린 부국강병의 기반 위에서 더욱 강성해졌다. 상앙은 비참하게 죽었으나, 그가 정비한 법과 제도는 진나라의 시황제가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국가를 수립하게 한 힘의 원천이 된 것이다.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혜문왕의 현손인 진시황이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그 진나라도 21년 만에 상앙의 잔인한 법 때문에 멸망하고 만다.

공자는 논어에서 백성을 법제와 금령으로써 인도하고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은 구차하게 형벌은 면하나 부끄러워함이 없어진다 했다. 반면 백성을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일치시키면, 백성들이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선함에 이르게 된다고 기록했다. 법제는 나라를 다스리는 도구에 불과하고 형벌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보조하는 방법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요즘 눈만 뜨면 압수수색, 구속영장, 먼지털이 수사 등 등 법과 형벌 관련한 언어들이 넘쳐난다. “법과 원칙”, “고무줄 잣대 같은 법”이라는 논쟁은 생활 속의 낱말이 된 지 오래다. 법 없이도 산다는 사람은 드물고 법대로 살자는 사람만 넘쳐나는 세상인 것이다.

묻고 싶다. 과연 인정머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법치의 세상이 걱정이나 근심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 파라다이스가 될 수 있는 것인가?.

한비자는 미래를 알고 싶으면100년, 1000년 전을 공부하라 했다. “인간사는 다시 돌아온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고도했다. 보복과 응전(應戰)부터 당장 멈추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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