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룡(목포대 사학과 교수)

 

강봉룡 목포대 교수
강봉룡 목포대 교수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그리고 광주광역시가 2018년에 ‘전라도 정명(定名) 1000년’을 맞아 역사와 미래의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공동기획한 뜻깊은 ‘전라도 천년사’ 편찬사업이 이렇듯 뜨거운 감자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전라도 천년사’는 200명이 넘는 역사학자들이 5년여의 각고 끝에 완성하여 2022년 12월 봉정식을 갖기로 하였으나, 그 직전에 일부 재야의 학자들과 시민단체 인사들이 특히 고대사 부문을 문제 삼아 식민사관에 의거하여 기술되었다고 규탄하고 이를 정관계 인사들에 호소하여 일부 정치인들의 지지성명까지 이끌어내는 바람에 봉정식은 보류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개월 간 방송토론과 신문칼럼 등을 통한 공방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 7월 27일 남도일보와 남도일보TV가 양 측(찬성과 반대 측) 인사 3명씩 6명을 초청하여 무려 160분에 달하는 유튜브 생방송 자리를 마련하고, 다음날 지상중계로까지 이어갔으니 가히 끝장토론이라 할 만하다. ‘전라도 천년사’ 찬성 측의 1인으로 참여한 필자의 소감은 토론시간이 길어서 수많은 말들을 쏟아낼 수 있어 좋았으나 너무 많은 말들이 교차하다 보니 논점이 흐려지고 겉돌았다는 아쉬움도 남았다. 그러던 차에 참여자들의 토론 후기를 환영한다는 남도일보 측의 제안이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주장하는 바의 논지를 보다 명료하게 하고자 한다.

첫째, 반대 측의 핵심 논점은 ‘전라도 천년사’의 고대사 부문이 임나일본부설을 신봉하고 식민사관에 의거하여 집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가짜뉴스에 가깝다. 임나일본부설은 2010년 한일역사공동위원회 고대사분과에서 폐기하기로 합의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제국주의 침략세력의 역사 이데일로기(식민사관)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듯 한일 역사학계에서 용도 폐기 처분한 임나일본부설을 ‘전라도 천년사’ 고대사 부문 집필자들이 신봉한다고 하는 주장은 너무나 어이가 없다.

둘째, 반대 측은 ‘전라도 천년사’ 고대사 부문 집필자들이 우리 사서인 ‘삼국사기’는 부정하고 일본 사서인 ‘일본서기’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성토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고대사학계는 대부분 ‘삼국사기’에 의거하여 우리 고대사의 골격을 구성하되 타 사서와 고고학자료 등을 교차 검증하는 과정에서 ‘삼국사기’의 극히 일부 기사에 한해서 신중하게 비판의 대상으로 삼을 뿐이다. 반면 ‘일본서기’에 대해서는 고고학 자료와의 교차 검증과 학계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서 백제계 사서의 잔존물로 인정될 수 있는 극히 일부의 기사에 한해서만 보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반대 측은 학계 전체가 ‘일본서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임나일본부를 추종하는 식민사학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으니, 전형적인 침소봉대가 아닐 수 없다.

셋째, 반대 측은 ‘전라도 천년사’가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을 한반도의 남쪽에 비정했던 일제강점기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견해를 그대로 답습한 식민사서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 역시 언어도단이다.

‘전라도 천년사’는 “백제사의 복원을 위한 순수한 목적”에서 ‘일본서기’에 나오는 극히 일부의 백제계 지명을 고고학자료와 연계하여 새롭게 비정한 것이니,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지역을 지배했다는 내용의 임나일본설을 관철하려는 음험한 목적”으로 왜곡한 일제의 식민사관과 어찌 동일시할 수 있겠는가! ‘전라도 천년사’는 오히려 그들의 식민사관을 바로잡는 극일사관이라 할지언정 식민사관이라 규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실제로 그간 우리 고대사학계는 축적된 고고학 자료와 ‘일본서기’에 포함된 백제계 기록의 흔적들을 교차 검증하여 그간 ‘삼국사기’의 기사만으로는 도저히 복원할 수 없었던 전라도의 지역고대사를 재구성하는데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고, 이러한 성과를 집대성하는 것이 ‘전라도 천년사’ 고대사 부문 집필의 주요 목표였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넷째, 조금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반대 측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27년(A.D. 9년) 4월에 “마한이 드디어 멸망하였다”는 기사를 금과옥조처럼 여겨 이 기사를 비판하기만 하면 곧 식민사학자로 규정해 버린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삼국사기’는 이전 백제나 통일신라, 그리고 고려초에 작성한,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기록들에 의존하여 12세기에 편찬된 사서이니 모든 기사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진(晉)나라 사람 진수가 3세기 후반에 편찬한 ‘삼국지’에 의하면 마한은 당시까지 실재한 것으로 나와 있고, 진나라의 역사서인 ‘진서(晉書)’에 의하면 3세기 말경에 마한이 8차례나 진나라에 사신을 파견한 것으로 나와 있으며, 더욱이 1980년대 후반부터 폭증한 우리 고고학의 성과자료에 의하면 전라도지역에서 백제는 물론 삼국의 유적유물과 완전히 다른 독특한 것들이 늦은 시기까지 대종을 이루고 있으니, A.D.1세기 초에 마한이 멸망했다는 ‘삼국사기’의 기사를 의심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역사 연구의 일환이다. 그런데 이를 의심하기만 하면 곧 식민사학자라고 규정해 버리는 것은 너무도 단순하고 해괴한 일방적인 주장이지 않은가!

다섯째, 반대 측이 우리 고대사학계를 통째로 식민사학자 집단으로 매도하는 주장의 비논리와 그것이 일부 먹히는 연유를 추리해 보고자 한다. 그들의 주장은 전형적인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에 해당한다. ‘임나일본부를 추종하는 식민사학자’라는 가공의 허수아비를 만들어놓고 우리의 고대사학계에 뒤집어씌워 맹공을 퍼붓는 것이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의 논법과 빼닮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논리의 오류가 명백함에도 그들의 주장이 일부 먹히는 연유는 무엇일까? ‘식민사학’이나 ‘식민사관’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작동하는 강력한 반감과 부정의 정서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전라도 천년사’ 고대사 부문을 평정심을 가지고 찬찬히 정독하다 보면 ‘식민사학의 허수아비’를 공격하는 오류에서 벗어나 전라도 고대사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반대 측의 의도대로 우리 고대사학계를 통째로 식민사학자 집단으로 몰아가면 누가 이를 가장 반기고 좋아할까 생각해 본다. 일본 극우 진영의 인사들이 이를 가장 반기지 않을까 한다. 일본 극우 인사들 중에는 이미 용도 폐기된 ‘임나일본부설’에 입각한 식민사관의 미몽에 사로잡혀 아직도 한국에 대한 맹목적인 우월감과 제국주의시대의 향수에 젖어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한국 고대사학계가 통째로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는 식민사학자라고 같은 한국인들이 매도해 준다면 그들이 얼마나 이를 반기겠는가는 쉽게 짐작이 간다.

‘전라도 천년사’ 반대 측의 학술적 리더로 자타가 공인하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올해 5월에 기고한 어느 칼럼에서 일본 내 7개 제국대학과 경성제국대학 및 대만제국대학의 출신들이 회원으로 있는 학사회(學士會)가 운영하는 도쿄의 학사회관에서 열린 한일 국제 심포지엄에서 동경대 모교수가 일본을 대표하는 기조 강연을 하고 자신이 한국을 대표하는 기조 강연을 하였노라고 자랑삼아 밝힌 바 있다. 일본 학사회 측에서 이덕일 소장을 기조 강연자로 초청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의 학술적 명망에 경도된 때문일까? 아니면 필자가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 때문일까? 이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고자 한다.

이제 5년여의 각고 끝에 탄생한 역저 ‘전라도 천년사’가 작금에 몰아치고 있는 ‘식민사관’의 광풍에서 벗어나 대중들에게 제공되어 차분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받게 되는 날이 속히 오기를 집필자의 일인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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