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간채(전남대 명예교수)

 

나간채 전남대 명예교수
나간채 전남대 명예교수

지난 7월 27일 남도일보가 주최한 ‘전라도 천년사 토론회’에 참여하여 느낀 소회를 간략히 밝히고자 한다. 여기에는 편찬위원회(이하에서 편찬위로 표기함) 측 대표 세 사람과 시민사회 측에서 세 사람이 마주하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논쟁하였다. 처음으로 마주한 자리였는데, 그 자리에서 놀랍고도 충격적인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우선 두 가지다. 하나는 편찬위 측 인사의 도덕적 비열함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식민사학에 대한 몰지각이었다.

첫째로, 편찬위 인사의 도덕적 품격에 관한 것이다. 작년 말 봉정식을 임박하여 ‘전라도 천년사’ 내용에 친일 식민사학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남원을 일본식 표현인 ‘기문’으로 기술된 사실을 확인한 후 시민사회는 현재까지 ‘전라도 천년사’ 내용에 담긴 역사왜곡을 규명하고 이를 바로잡는 운동을 전개하여 내용검증을 주장해왔다. 이는 검증과정을 통해서 내용이 더 충실하고 지역주민의 자긍심을 북돋울 수 있는 천년사를 간행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편찬위는 이미 올해 초에 종이책으로 1000질(34,000권)을 간행하여 배포했고, 문제가 확대되자 회수를 시도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그 순간까지 나 역시 검증결과를 반영한 후에 인쇄하는 줄로 믿고 있었다.

편찬위는 시민들이 검증자료를 반영한 후에 출판하는 것으로 믿는 줄 알면서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편찬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전자책(e-book) 상태의 겉모양 갖추기로 검증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이는 문제의 핵심사실을 숨긴 거짓행위가 아닐 수 없다. 전 시민을 기만한 행위이다. 민주사회의 기본 도덕인 정직성을 파괴한 행위이고, 민주사회의 통상적 규범질서를 위반한 일종의 일탈행위라 할 것이다. 거짓말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거짓된 사실을 그대로 순진하게 말하는 것, 즉 단순한 거짓말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사실을 직접 말하지 않고 간접적 사실을 이용하여 이를 숨긴 채 지능적으로 모면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도덕적으로 더 타락하고 비열한 방법이다.

두 번째는 식민사학에 관한 것이다. “일본서기를 인용하면 다 식민사학이냐”는 그들의 항변에 관하여 토론했다. 우선, 이들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주요 지역을 확실한 근거도 없이 일본말의 지명으로 비정하여 기술함으로써, 반도의 남부지역을 일본 땅으로 오해하게 할 만큼 우리역사를 왜곡했다. 또한 이들은 일본제국주의 황국사관의 교본이라 할 ‘일본서기(日本書紀)’, 그리고 이에 기초하여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저술된 일본학자들의 연구결과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지명을 결정함으로써 ‘식민사학’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것이다. 일본 열도 땅에는 그 지명이 정확하게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고 조선 땅 내부에 있는 것처럼 왜곡하여 주장했다. 경상도, 전라도 남부지역은 오래 전부터 일본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는 역사적 근거를 조작하는 작업이다. 일본이 16세기에 7년에 걸쳐 조선 땅을 유린했고, 20세기에는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든 죄악을 정당화 하는 개념이고 논리인 것이다.

여기에서 한국에 자리 잡은 식민사학에 대하여 미리 언급해 둘 일이 있다. 현재 한국사학 교수들은 거의 전부가 친일 식민사학의 뿌리인 이병도(서울대 사학과 교수)와 신석호(고려대 사학과 교수)의 역사학을 신봉하고 이를 계승 발전시킨 학자집단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두 사람은 일본에서 수학하였고, 제국주의 황국사관의 신봉자인 일본학자의 학통을 이어받았으며, 조선총독부에서 이완용이 고문이었던 ‘조선사편수회’ 직원으로서 한국역사를 왜곡날조한 조선사 편찬사업에 참여했던 사람이었다. 이들의 학문 활동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오늘의 한국사학계는 그 몸통 전체가 식민사학의 성향에 젖어있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추론이다. 실제로, 현재 이들은 박사논문 주제 및 지도교수 선정, 연구비 배정, 대학 교수직 채용 등에서 권력을 무기로 활용하면서 강고한 결속을 유지하고 있으며, 외부인에겐 매우 잔혹한 공격성을 보인다. 이를 테면, 독립운동사연구는 금기 사항이 되어 있고,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사를 우리말로 번역한 사업은 이유 없이 교육부로부터 출판금지 처분을 받았다. 지난 5월, 이 논쟁의 초기에 그쪽 사학도의 글에 ‘두계신(斗溪神)’이라는 말과 아울러 ‘참전(參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 집단의 비합리적 결합양식과 잔혹한 공격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토론회로 돌아와서 보면, 편찬위 측은 자기의 학문이 식민사학이라고 규정받는 데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갖는 자세였다. 그들은 일본서기에 매달리는 이유를 그 책 내용이 가장 충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일본서기라는 역사책이 학술자료서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리고 많은 허구성과 조작성을 인정하면서도 이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앞뒤가 맞지 않다. 이들의 주장에서 더 황당한 사실은 지금까지 식민사학 비판에 생애를 바쳐온 이덕일 박사를 (엉터리 논리로) 오히려 친 일본 국수주의라고 면전에서 왜곡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이 박사가 진실을 설명해주어도 소용없었다. 이 지점에서 이들의 폐쇄성과 독단성을 생각했다.

반면에, 이들은 허구과 조작으로 만들어진 일본서기에 집중하여 주목하면서도, 우리의 전통 고사서인 환단고기를 위서로 규정하여 금기시 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환단고기나 단군세기 등의 사서내용은 일본서기의 허구성이나 조작성에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사실적이고 역사적이다. 특히 단군세기(서기전 1733년 기록) 천문현상에 대하여 서울대 교수가 컴퓨터 모의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는 사실을 논문으로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사학의 반민족성은 변함이 없다. 이 토론에서 필자는 식민사학이 갖는 폐쇄적 배타성, 교활함, 독점욕, 잔혹성을 직접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사태에 직면하여 이를 해소하고 더 완성도 높은 전라도 역사를 정립하기 위한 방안은 어떻게 모색되어야 할 것인가?

1.편찬위원회는 시민을 기만한 여러 가지 실천에 대하여 우선 그 진실을 밝혀야 한다. 2.지역행정의 최종책임자인 지방자치단체장은 사태를 바로잡을 결단을 공표해야 한다. 시·도의회는 주민의 대변자로서 이 사태수습에 주도적으로 앞장서야 한다.

3.시민사회는 민주사회의 주인으로서 시민의 힘에 의한 사태해결을 위해 총력을 결집 경주해야 할 것이다. 지역사를 편찬하는 이유는 한국사 전체의 흐름 속에서 전라도가 수행해 온 역사적 사실과 그 사실에 새겨져 있는 정신을 밝혀서, 지역주민의 자긍심을 드높이고 그 명예를 향유하는데 있다. ‘국가가 형체라면 역사는 혼(魂)’이라는 고려 말 선각의 언명은 전라도 천년사의 무게를 알게 해준다. ‘약무호남 시무국가’를 통찰한 눈으로 지역의 역사를 다시 성찰하여 그 빛을 밝혀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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