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정대감이 보낸 서신의 내용대로 딸을 따뜻하게 받아들여 제 어머니에게 보낸 여인의 아버지는 다시 정대감이 보낸 서신을 꺼내 들고 읽으며 재삼 음미(吟味)해 보는 것이었다.

서경(書經) 대우모편(大禹謨篇)에 이르기를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 주면서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미약하니, 정성을 다해 한마음으로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아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하였던 것이었다. 항상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감정(感情)에 들끓어 살아가는 게 세상살이 아니던가. 순간순간마다 이 칠정(七情)에 휘둘리어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은 늘 위태롭고, 인의예지(仁義禮智) 사단(四端)으로 단단히 매어 잡는 도심(道心) 또한 사람으로서는 미약한 것이니, 오직 한마음으로 그 가운데를 잡도록 하라! 고 이른 순임금 또한, 우임금에게 치세지도(治世之道)로서 윤집궐중(允執厥中) 할 것을 강조하고 있음이 아니던가!

그것을 생각하는 여인의 아버지는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딸자식의 일에 맞닥뜨려 무조건 엄격한 세상의 법만을 따져 악착같이 우격다짐하는 것도 그 중(中)을 잡는 것이 아니고, 또 제 딸자식 일이라고 감정에 휩싸여 무조건 감싸고 드는 것만도 그 중(中)을 잡는 것이 아니었으니, 이는 자칫 잘못하여 딸자식의 일에 맞닥뜨려 크게 마음이 흔들려 일을 그르칠까를 경계하는 정대감의 사려 깊은 배려라는 것을 아버지는 즉각적으로 깨달아 알았던 것이었다.

남 앞에 커다란 감투를 쓰고 나서서 그 막중한 임무와 책임에 대한 중(中)을 바로잡지 못하고 사적인 욕망에만 휘둘리어 내 새끼에 내 사람 타령이나 읊조리며 챙기는데 우선 골몰하고, 거기다가 뇌물에 온갖 아첨아부(阿諂阿附)에 휘둘리어 일을 처리한다면 풍랑(風浪)에 중심을 잃은 배처럼 그 나라나 집단은 결국, 좌초침몰(坐礁沈沒)하고 말지 않겠는가! 그것은 비단 가정사라고 하여 어찌 예외일 수 있겠는가!

급기야 여인의 아버지는 사돈인 정대감의 깊은 뜻을 받아들여 정대감이 점술가 이만갑을 통해 중매한 김선비에게 딸을 시집보내기로 작정하였고, 그에 대하여서 정대감의 요청대로 일체비밀(一切秘密)에 부치기로 하였던 것이었다.

사실 아들 죽고 홀로된 수절하는 젊은 며느리를 개가(改嫁)시킨 것은 유학자(儒學者)인 퇴계 이황도 그리했던 것이었다. 이황의 둘째 아들 채(蔡)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어머니를 잃어버렸다. 의령 외가에서 자라서 류씨 처녀를 만나 혼인하였는데, 21세 때 자식도 남김없이 죽고 말았다. 퇴계의 둘째 며느리 류씨는 졸지에 청상과부(靑孀寡婦)가 되고 말았다.

아들 죽고 홀로 된 젊은 며느리 류씨를 바라보는 퇴계의 마음은 간장이 끊어지는 듯 아팠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바라만 볼 뿐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퇴계는 홀로 된 며느리 류씨 방앞을 지나게 되었다. 당시에는 홀로된 여인을 보쌈하여 훔쳐 가기도 하는 터라 만약 그리된다면 사돈 집안과의 사이가 나빠질 수 있어 퇴계는 밤마다 며느리의 방에 신경을 썼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깊은 밤 홀로 지내는 며느리 류씨 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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