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자신이 죽어 산 자들의 훌륭하다는 모든 것을 다 온전히 지켜낼 수 있다면, 아니 자신이 죽어 그 모든 것을 한층 더 훌륭하게 발전시켜낼 수 있다면......... 아니, 아니, 이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이 처참한 고통지경(苦痛地境)에서 해방(解放)될 수만 있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류씨 며느리는 치맛자락을 벗어 찢어 긴 줄을 만들려고 치마끈으로 손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시아버지 퇴계가 아버지에게 전달해 주라고 준 서신이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도대체 저기에는 무슨 내용이 적혀있는 것일까? 카랑카랑한 대유(大儒) 선비 퇴계는 류씨 며느리의 아버지 즉 사돈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 것일까? 류씨 며느리는 죽을 때 죽더라도 그 내용이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서신 속에는 시댁에서 류씨 며느리의 잘못된 언사(言辭)와 행동(行動) 그리고 자신도 모를 비행(非行)을 지적하며 그 까닭으로 친정으로 돌려보낼밖에 없었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을 것이라고 류씨 며느리는 지레짐작 생각하는 것이었다.

어찌하여 한 치 빈틈도 오차도 용인하지 않는 대쪽같은 선비 이름 높은 시아버지를 만나 이렇게 시댁을 쫓겨 나는 설움을 겪어야만 한단 말인가! 학자로서 관리로서 티끌 같은 허점도 용납하지 않았을 엄격(嚴格)하고 비정(非情)하기만 한 냉혈한 같은 시아버지를 만났단 말인가! 이것도 복 없는 자신의 운명(運命) 때문일까? 기왕에 남편도 죽어 수절과부가 된 마당에 시댁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으니 이 야속한 세상에서 무엇을 더 바라랴! 이대로 돌아간다면 친정 부모님에게 두고두고 불명예스러운 짐이 될 것이고, 또 먼저 간 남편이며 고명(高名)한 학자 집안인 시댁에도 커다란 장애(障礙)가 될 게 빤한 것 아닌가! 운명이 그렇다면 죽음을 받아들일밖에....... 류씨 며느리는 퇴계의 서신을 들고 그렇게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이 서신을 펼쳐 읽고 그 내용을 확인하고 죽는다고 하여도 어차피 실망만 더 클 뿐 차라리 이대로 죽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 류씨 며느리의 손가락은 바들들들...... 떨리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차피 죽을 바에는 정확한 이유라도 알고 죽는 것이 한편으로 더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 류씨 며느리는 시아버지 퇴계의 서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떨리는 손끝에서 서신을 깜박 놓쳐버리고 말았다. 땅에 떨어지던 서신이 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맞아 펄렁거리더니 그대로 펼쳐져 땅바닥에 뒹구는 것이었다.

‘허참! 남의 속도 모르고.......’

류씨 며느리는 얼른 바람에 달아나려는 서신을 붙잡아 손에 들고 온갖 절망(絶望) 스민 한스러운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순간 한 줄 한 줄 시아버지 퇴계가 정성 들여 쓴 글의 내용이 류씨 며느리의 눈에 자신도 모르게 들어오는 것이었다. 죽음을 결심한 류씨 며느리는 그 자리에 앉아 우선 그 서신을 자신도 모르게 차근차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서신을 잠시 읽어내려가던 류씨 며느리가 가슴을 깊게 들썩이며 갑자기 크게 흐느껴 우는 것이었다. 과연 거기에는 무슨 내용이 적혀져 있는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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