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석(목포과학대학교 교수)

 

형광석 목포과학대학교 교수

시월의 끝자락이 가깝다. 밖으로 나오라고 하늘과 온산이 부추긴다. 물에 비친 단풍의 그림자가 주위의 경관과 어우러져 보기에 좋다. 혼령으로나마 오셔서 단풍을 함께 즐겨 감상할 님은 저 먼 곳에라도 계시는가?

아침 신문에서 지난 22일 오후 한·미 공군과 일본 항공자위대가 한·미·일 첫 공중훈련을 하는 사진을 봤다. 혹자는 어쩔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일본에 대한 무섬증이 밀물로 온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그 전쟁터 대부분이 청나라도 일본도 러시아도 아닌 우리나라 삼천리 강토였다. 일본은 자기네 땅을 병참기지로 만들고 두 전쟁에서 이겼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이후 기억할 그날이 어찌 한둘이겠는가. 그 혁명 이후 15년이 지난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경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는 중국 하얼빈역에서 6발의 총탄으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일본 제국의 제1대 한국통감)를 포살(砲殺)하였다. 그 이후 20년이 지난 1929년 10월 30일에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으로 평가받는 나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왜 나주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일까? 평소 궁금했다. 당시 훌륭한 선생님의 가르침을 익히고 실천하고자 하는 피 끓는 학생들을 그렇게 하도록 추동한 사회경제적 상황은 어떠했을까? 이에 대한 내 생각을 제94주년 나주학생독립운동 기념일에 맞춰 시로 지어봤다.

“ ‘타오르는 성화(聖火)’// 목숨 빼앗긴 동학농민 전봉준 장군이여!/ 목숨 빼앗긴 대한의군(大韓義軍)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여!/ 일본 왕 메이지/ 일본인 밀물로 타오르는 강// 1910년 완공한 신작로/ 남동에서 북서로, 나주읍성(羅州邑城) 두 쪽 낸 일등도로/ 조선인은 북서쪽, 일본인은 남동쪽// 남문 밖에 세워진/ 1907년 나주공립보통학교, 1926년 나주공립농업보습학교/ 조선인 차별 교육, 차오르는 분노의 터전// 1913년 7월 1일, 남동쪽 나주역 개통/ 광주로 통학하는 북서쪽 조선인 학생/ 일본인 동네 남동쪽 오가며 소리 없는 아우성// 1919년 삼일독립만세혁명,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920년 항일독립전쟁 원년/ 이제 조선인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 11년, 1929년 10월 30일 해질녘 나주역 광장/ 대한민국 업신여기는 소리, ‘센진노 구세니(鮮人のくせに·조선인 주제에)…’/ 올려 뻗는 맨주먹, 우리는 피 끓는 학생, 타오르는 성화다// 나흘 지나 11월 3일, 초승달 시월 초사흘, 개천절/ 삼천리금수강산 물들인 광주학생독립운동, 오직 바른 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메이지절(明治節) 일본열도 판 판 판 판, 쓰나미 덮치도다// 천지개벽 시월상달 어머니 사랑에/ 동짓달 땅속 우레 받아 꿈틀거리는 봄눈/ 자주·독립·민주, 대한민국 눈빛이어라// 엄마야 누나야/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굽이굽이 타오르는 강, 금모래 밭/ 동지섣달 지나 정월 설날, 일어서는 날, 함께 가자, 우리// 일본군 대한민국 땅 상륙 일절 꿈꾸지 못하게/ 항일·극일·상생, 대한민국 105년 10월 30일/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震源), 나주학생독립운동, 타오르는 성화여!”

오는 10월 30일 옛 나주역에서 ‘제15회 나주학생독립운동 헌정음악회’가 열린다. 제게는 과분하게도 그날 위 시가 낭송으로 헌정된다.

위 시 1연을 쓸 때, 녹두꽃이 말을 걸어왔고, 일제에 땅을 빼앗긴 영산강 유역 농민들의 눈물겨운 투쟁을 그린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문순태)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6연의 일본말 ‘노구세니’(の癖に)는 ‘~주제에’라는 뜻으로 남을 심히 비난하는 말이라 한다. 버릇 벽(癖)은 질병에 가까울 정도로 못된 버릇이리라. 7연의 ‘판 판 판 판’은 일본열도에서 큰 섬 4개, 즉 규슈, 시코쿠, 혼슈, 홋카이도를 뜻한다. 9연의 ‘설날, 일어서는 날’은 목포 공생원의 노래로 알려진 “설”에 나온다. ‘낯이 설어 설인가/ 서러워서 설인가/ 우리에겐 설날이/ 일어서는 날이다’

타오르는 성화는 꺼지지 않으리라. 타오르는 강, 동해, 남해, 서해에 일본인 밀물은 절대 없어야 하리. 그래야 단풍이 피고 질 때 그 님이 오셔서 우리와 함께 즐기고 아쉬워하겠지요.

※외부 칼럼·기고·독자투고 내용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