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식(남도일보 정치부장·국장대우)

 

김명식 남도일보 정치부장·국장대우
김명식 남도일보 정치부장·국장대우

며칠 후면 10월 끝자락이다. 가수 이용의 노래처럼 ‘10월의 마지막 밤’이다. 그리고 올해 달력도 딱 두 장만 남는다. 때맞춰 높은 산의 단풍도 아래로 급하게 내려오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이 실감난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봄에 씨뿌리고 여름내 가꾸어 온 곡식들을 거둬들인다. 오곡백과를 수확하는 가을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풍성한 문화행사와 축제가 쏟아진다. 광주와 전남에서도 추석 전후로 곳곳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 중이다.  

지역민들에게 올 가을은 축제보다는 ‘의대정원 확대’ 이슈가 더 크게 다가온 상황이다. 정부의 2025년부터 의대 정원 확대 추진으로 ‘30년 숙원’이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원 확대=전남 의대 신설’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전남은 의대 신설이 유력한 곳으로는 언급된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의대가 없는 지역이다. 의료 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매년 300명 가까운 전남도민이 광주에 있는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로 이송되던 중 사망한다. 길게는 2시간 5분 걸리는 응급의료센터를 찾아가다가 길에서 죽음을 맞는 게 전남의 의료 현실이다. 

언제까지 이래야 되는가. 오죽했으면 국정감사장에서 비전남 출신 의원이 나서 "오랜 시간 의료혜택에서 차별을 겪은 전남지역을 의료인을 양성하는 의과대학 유치 1순위 지역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기대가 충족될 지는 알수 없다. 의대 유치 희망 지역은 전남 외에도 많다. 교육부가  자료에 따르면, 의대 신설 수요가 있는 대학은 ▲수도권 : 인천대(인천) ▲충청권 : 카이스트(대전), 공주대(충남), ▲전라권 : 목포대(전남)·순천대(전남), 군산대(전북)·국립공공의대(전북) ▲경상권 : 부경대(부산), 창원대(경남), 안동대(경북)·포항공대(경북) 등 총 11개 대학이다. 하나같이 나름의 의대 신설 이유를 내세운다. 

의대 교육 특성상 기존 시스템 확대에도 매우 큰 비용이 든다. 11개 대학에게 일정 규모 이상의 의대를 신설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야 가능한데 그만한 지원을 할 준비가 됐을지 의문이다. 설령 예산을 투입해 시설과 장비를 어느 정도 갖추더라도 필요 인력 확보는 어려운 상황이다. 의대 신설에 의료계가 냉정(불가능 의미)하게 판단하는 근거다.  

더구나 전남은 오래전부터 동부권(순천대)과 서부권(목포대)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정부가 전남 의대 신설로 방향을 잡더라도 2곳 모두는 미지수인 상황에서 서로 ‘내 지역으로’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다. 얼마 전 서울에서 순천과 목포를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이 장소 따로 시간 따로 삭발식을 하는 웃픈 장면도 보여줬다. 마치 사생결단식 대립을 예고하는 듯 했다. 

선출직 국회의원이 지역의 여론을 대변하고, 현안을 챙기는 건 당연하다. 다만, 의대 유치와 관련 지역 간 갈등을 조정하고 그 과정에서 타협점을 만들어간다는 정치 본연의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지역에서는 동부권과 서부권의 의대 유치 경쟁 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일각에서 내년 총선을 겨냥 민심을 잡겠다는 정략적 제스처라는 의구심을 갖는 연유다. 

김영록 전남지사가 최근 "(의대 신설에 대비)목포대, 순천대, 도민 의사를 한곳으로 모으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전남 의대 신설이라는 ‘총론’에 공감하면서 ‘반드시 내 지역으로 와야 한다’고 고집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행간이 읽혀진다. 자칫 정치권을 중심으로 지역간 경쟁이 과열되고, 대립과 갈등이 증폭되는 걸 경계하는 당부다. 

복지부는 어제(26일)부터 전국 의대를 대상으로 정원수요 조사를 시작했다. 각 대학의 수용 능력 등을 파악해 구체적인 증원 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사전 조사다. 또  기존 대학을 중심으로 정원 확대를 우선 검토하고 지역의대 신설을 지속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 차원에서 전남 의대 신설 가능성을 공식화 한 것이다. 지역민의 기대감은 더 커지고, 유치경쟁도 더욱 뜨거워지게 됐다. 

전남 의대 신설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대립이 아닌 통합의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는 의미다. ‘따로 국밥’ 행보는 분열과 갈등만 초래할 뿐이다. 전남 의대 신설과 관련 한 목소리를 내는데 지역 정치권이 앞장섰으면 한다. 그래야 내년 봄에 심어질 씨앗에서 더 크고 튼실한 열매가 나온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