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 말을 깊이 있게 생각하는 허씨 집안의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그것은 허적의 형 되는 미수 허목(許穆)이었다. 허목은 남인의 영수로 과거를 보지 않고도 늦게 56세라는 늦은 나이에 관직에 나가 훗날 우의정이 되었던 90까지 천수(天壽)를 다 누리고 살다간 인물이다. 삼척부사로 있을 때는 파도로 침수가 되자 그것을 막기 위하여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를 세워 막을 만큼 비상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허목이 허적의 이야기를 듣고 어느 날 허적의 집에 방문하여 말했다.

“혹여 아이를 낳거들랑 반드시 엎어버려야 할 것이다! 분명 허적이 죽인 구렁이 업신(業神)이 원한(怨恨)을 품고 이 집안의 아들로 환생(還生)할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허적은 참담(慘憺)했다. 과연 그따위 미신(迷信) 같은 이야기가 통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허목의 이야기를 막무가내로 무시(無視)할 수만은 없었다. 허목은 신통할 만큼 재주가 각별한 사람으로 소문이 나지 않았는가!

그러는 사이 열 달이 번쩍 흘러 허적의 소실이 예상대로 아들을 낳았다. 얼굴을 보니 훤한 대장부(大丈夫)의 기상(氣像)이 서린 옥골선동(玉骨仙童)의 귀상(貴相)이었다. 허적은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허목의 말이 자꾸 귀에 거슬리는 것이었다.

“반드시 엎어버려야 할 것이다!”

허적은 허목의 그 말이 귓바퀴에 뱅뱅 돌았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허적은 아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디를 보아도 도무지 구렁이 업신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었다. 차일피일(此日彼日) 미루다가 아이의 돌이 되었다. 허적은 아들의 첫돌을 새느라 걸게 음식을 장만하였다.

그날 허목이 허적의 집에 방문하였다. 허목은 담뱃대를 꺼내더니 거기 담뱃불을 붙여 시뻘겋게 불이 타오르도록 빨더니 옥동자의 꼬리뼈 부분으로 슬그머니 가져가는 것이었다. 순간 아이가 죽는다고 크게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었다.

“으아아아앙!..........”

사실 허목은 담뱃불을 아이의 꼬리뼈 부분으로 가져갔을 뿐 전혀 살에는 닿지 않았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구렁이의 꼬리가 꼬리뼈 밖으로 삐져나와 있어 허목을 그것을 확인해 본 것이었다.

“이 보아라! 기겁(氣怯)하여 이 아이가 우는 것을! 이는 필시 허적이 죽인 구렁이의 업신이다! 이 집안이 무사(無事)하려면 어서 이 아이를 없애라!”

허목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허적은 당시 이인(異人)이라고 소문이 난 허목의 말을 거부하지 못하고 피눈물을 머금고 그 아이를 없앴던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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