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영(남도일보 교육문화체육부장)

 

정세영 남도일보 교육문화체육부장

#갈망하는 봄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우리의 민족혼을 불러 일으키는 저항시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일제강점기 당시 국권상실의 현실을 빼앗긴 들로 비유하며 조국의 광복을 봄에 빗대었다.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 봄은 암담하고 암울한 시대를 벗어나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상징한다.

#역사의 반복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최근 누적 관객 1천만명을 돌파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박정희 시해 사건 이후 벌어진 쿠데타 세력과 진압군의 일촉즉발의 9시간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그를 따르는 군내 사조직 하나회가 군 지휘권을 불법적으로 찬탈했던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했다. 12·12는 이듬해 5·18 민주화운동을 촉발했으며 이로 인해 민주화를 외치던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희생을 당해야 했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서울의 봄’이란 표현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에서 비유했다.

‘프라하의 봄’은 체코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다. 1960년대 민주화 운동 지도자였던 두브체크는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프라하의 봄’을 주창한다. 봄이란 것은 자유를 상징하는 것으로 ‘프라하에 자유가 올 것인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1968년 이 민주화 운동은 절정에 이르러 매일같이 수만명이 바츨라프 광장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사태가 커지자 당시 소련의 서기장이던 브레제네프가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군대를 파견해 6천대의 탱크로 프라하를 진군해 무력 진압한다.

결국 결실을 맺지 못한 ‘프라하의 봄’은 1989년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시민혁명으로 번지면서 공산주의 몰락을 이끌어 낸다. ‘서울의 봄’ 역시 신군부가 투입한 계엄군에 의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무력 진압되면서 종결됐다.

민주화를 갈망했고 무력에 처참히 짓밟혔지만 끝내 빼앗긴 봄을 되찾은 광주와 프라하. 영화가 역사를 재조명하며 다른 듯 닮은 두 도시의 봄이 다시 꿈틀거린다.

#아직은 이른

영화를 보면서 시대에 묻는다. 우리에게 봄은 왔을까. 5·18은 어느덧 성년을 넘어 중년에 이르렀지만 아직까지는 아물지 못한 상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규명되지 않은 진실이 우리에게 봄은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최근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4년여 간의 공식 조사 활동을 종료했다. 성과도 있었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계엄군이 민간인을 ‘확인 사살’하고 ‘조준 사격’하는 등 학살을 자행했다는 증거를 확보했고 5·18왜곡·폄훼를 바로잡는 계기가 됐다. 일부 무명열사의 신원 확인, 행방불명자 조사도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평가다.

하지만 핵심 진상규명 과제였던 ‘군에 의한 발포 경위와 책임 소재’를 밝혀내지 못했다.

국가기관의 5·18 은폐·왜곡·조작과 공군 전투기 출격 대기 의혹도 결국 규명에 실패했고 전남 일원 무기고 피습과 군과 경찰의 사망·상해 피해에 대해서도 직접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시대의 비극을 관통한 영화의 잔상 탓에, 미완성으로 남은 5·18의 진상 규명이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한 해의 끝자락, 올해 겨울은 유난히도 춥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