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채(남도일보 디지털뉴스본부장)

 

윤종채 남도일보 디지털뉴스본부장
윤종채 남도일보 디지털뉴스본부장

“사안을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 “시기가 되면 할 말을 하겠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대표적인 어법들이다. 원래 이 전 대표는 현안이 나올 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데 신중에 신중을 기하던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신중’ 리더십은 엇갈린 반응을 낳곤 했다. 5선 국회의원과 전라남도지사, 국무총리까지 지낸 정치적 무게에 걸맞은 안정감이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너무 느리고 답답하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정치적 라이벌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화법이 ‘사이다’였다면, 이 전 대표의 화법은 ‘고구마’로 대비되곤 했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이낙연의 정치’를 본 적이 없다. 그는 선도자였던 적이 없다. ‘김대중 정치’, ‘호남 정치’, ‘문재인 정치’를 따르거나 누리거나 도왔다. 중요하고 의미 있었지만 스스로 그어놓은 금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전 대표가 달라졌다. 사람들이 ‘설마’ 하던 사이, 순식간에 신당 창당의 깃발을 들고 ‘자기 정치’를 시작했다. 뜸 들이며 신중을 기하던 이 전 대표의 모습은 사라지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신당을 만들려는 모습의 ‘뉴 이낙연’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면 이 전 대표는 왜 신당 창당을 하는 것일까. 이 전 대표는 “그 좋았던, 자랑스러웠던 민주당은 과연 누가 훔쳐 갔는가, 어디로 갔는가?”라며 현재의 민주당에 대해 “(이재명 대표) 본인의 사법 문제가 민주당을 옥죄고, 강성 지지자들 영향으로 민주주의 면역체계가 무너지면서 도덕적 감수성이 퇴화했다. 당내 민주주의와 다양성이 억압되고 정책이나 비전을 위한 노력이 빛을 잃게 됐다”고 우려해 왔다.

그런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드러냈다. “윤석열 정부는 실패가 예정된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 민주당이 대안이라고 국민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새로운 대안이 제시되는 것이 국가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고 신당 창당 이유를 밝혔다.

국민들이 “정부는 견제해야 하지만 그 심판의 주체가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은 아니다”라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당인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사당화로 치닫는 지금, 야당은 대안이 필요하다. 그 대안이 ‘이낙연 신당’일 수도 있다. 적어도 민주주의와 도덕 수준에서 지금보다는 나은 정통 민주당의 명맥, 법통을 잇는 당을 만들겠다는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사당으로 전락하든 말든 공천 받아서 당선만 되면 ‘만사 OK’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라면 그런 정당은 희망이 없다. 이 전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며 “정치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악의 편에 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비록 야당이 둘로 쪼개지더라도 정치개혁이라는 ‘명분’으로 탈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소수일지라도 거기에 ‘작은 희망’이 있는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면 무당층이 두 당의 지지율과 버금가는 비율로 존재한다. 갈수록 극단화되고 있는 양당 정치에 대한 실망이 새로운 정치 세력에 대한 갈망을 키우는 토양이 되고 있음이다.

이 전 대표는 “이대로 총선에 가면 3년째 시험 문제가 똑같이 나와 국민이 ‘답이 없다’라고 할 것이다. 제3의 답을 제시해야 한다. 여야 모두 싫고 시험 문제에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의 문제점 인식과 해법 제시는 부분적으로 옳고,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국민들은 ‘묻지마 보수우파’ 30%, ‘묻지마 진보좌파’ 30%, ‘모두 싫어’ 또는 ‘관심 없어’ 30%, ‘잘 몰라’ 10% 정도로 어림잡을 수 있다. 이 전 대표는 ‘모두 싫고 관심이 없는’ 30% 유권자들에게 투표장에 나와 찍어 주고 싶은 당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이에 맞는 슬로건은 운동권 정치 청산과 국회의원 특권 폐지가 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가 대개조 방안 제시와 전문가로 인물 교체를 해야만 정치 냉소, 무관심 계층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대선 주자였던 이 전 대표가 김대중·노무현 정신 계승을 기치로, 호남과 수도권을 지역 기반으로 문재인 정부 정세균·김부겸 전 국무총리 및 친문 의원들과 의미 있는 결집을 이뤄내면 파괴력이 커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낙연 신당이 거대 민주당을 쪼개 정국을 3(국민의힘): 3(민주당): 3(이낙연 신당)으로 나누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2024년은 갑진(甲辰)년, 용의 해다. 오행에서 갑(甲)은 ‘푸른색’을 의미, ‘청룡(靑龍)의 해’인 셈이다. 예로부터 청룡은 길조(吉兆)로 인식돼왔다. 용문점액(龍門點額). 황하에 용의 문으로 불리는 협곡이 있다고 한다.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던 물고기가 여기를 힘차게 뛰어올라 통과하면 용이 돼 승천할 수 있다. 실패하면 이마(額)에 상처(點)만 남긴 채 하류로 떠내려가 잡어가 되고 만다. 이 전 대표가 용이 될려면 ‘엄중 정치인’에서 ‘장렬한 순교자’가 돼야 한다. 신당 창당을 응원하며 성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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