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영(남도일보 교육문화체육부장)

정세영 남도일보 교육문화체육부장

그리스 신화 속에는 ‘프로크로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가 나온다. 프로크로스테스는 고대 그리스 아테나이 도시국가 근교에 살았는데 지나가는 행인을 유인해 집안에 들어오게 한 뒤 자기 침대보다 크면 큰 만큼 머리나 다리를 잘라 죽이고 작으면 작은 만큼 몸을 늘려 그로 인해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요식적으로 끼어 맞추는 ‘독단’을 일컫을 때 쓰인다.

동양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로 ‘삭족적리(削足適履)’가 있다. 발을 깎아 신발에 맞춘다는 뜻이다.《회남자(淮南子)》 ‘설림훈’에 보면 한 남자가 신발을 사러 신발가게에 들어갔다. 주인이 신 한 켤레를 주었으나 신이 너무 작았다. 남자는 신을 바꾸지 않고 자신의 발을 자르려고 했다. 이 남자는 모자를 사러 갔을 때에도 작은 모자에 자기 머리를 맞추려 두피를 깎아 내려고 했다. ‘삭족적리’는 불합리한 방법을 억지로 적용한다는 의미다.

4·10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공천 파동이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선거철마다 공천을 둘러싼 잡음은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심상치 않다.

시스템 공천이 아닌 밀실 공천, 이재명 대표 의중에 따라 사천이 이뤄지고 있다는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역의원 평가 하위 20% 대상자에 비명계가 대거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공천 학살’이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전국적으로 비명계 현역 지역구에서는 해당 의원을 제외한 정체불명의 여론조사가 시행됐고 이 대표와 강성 지지층에 이견을 냈던 의원들이 줄줄이 ‘평가 하위 20%’ 통보를 받았다. 김영주·박용진·윤영찬 의원 등은 하위 통보 사실을 공개했다.

민주당은 큰 틀의 평가 항목 이외에는 하위 20%에 포함된 이유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고 있어 불신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민주당의 ‘심장부’인 광주에서도 ‘친명 챙기기’와 ‘비명 솎아내기’가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당내에서 비명계로 분류되던 광주 서구갑 송갑석 의원은 자신이 최근 하위 20% 통보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국회가 전체 국회의원 300명의 의정활동을 평가해 시상하는 의정대상을 3회 연속 수상했고, 3회 연속 받은 의원은 송 의원을 포함해 단 2명 뿐이라지만 하위로 분류됐다.

앞서 친명으로 분류된 광산을 민형배 의원 지역구에서는 민 의원과 예비후보 중 경쟁력이 가장 약한 후보로 경선 구도가 짜여져 공천 후폭풍이 일기도 했다.

컷오프된 예비후보 2명이 삭발과 단식농성에 나서자 민주당 지도부가 민 의원을 포함한 3인 경선으로 대진표를 다시 조정해 공천 관리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재명 대표는 “가죽을 벗기는 고통이 따르는 혁신 공천”, “환골탈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종의 진통”이라고 했지만 국민 눈높이에선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는 맥락이기도 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광주·전남은 공정한 경쟁, 상식적인 공천을 통한 경쟁력 있는 인물이 후보로 선출되길 원하고 있다. 친명-비명, 친문-비문에 의한 볼썽사나운 계파 갈등을 보고 싶어하는 유권자는 없다. 공천 파열음이 커진다면 민주당의 본산인 광주·전남 지역민의 민심이반도 불가피하다.

지난 2021년 4월, 이재명 대표가 경기지사이던 시절 ‘공정 벌금’을 둘러싸고 국민의힘 측과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삭족적리’(削足適履)라는 고사성어를 쓴 적이 있다. 국민의힘 측이 자신이 제안한 ‘공정벌금제’에 대해 억지로 끼워맞추듯 ‘삭족적리’식 해석을 내놨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다시 ‘삭족적리’라는 이 대표의 페이스북 글이 떠오른다. 민주당 공천이 세간의 의혹대로 답은 이미 정해진 ‘답정너’ 식으로 흘러갈 지 지켜볼 일이다. 결과에 따라 총선의 성패가 좌우된단 사실을 민주당은 더이상 간과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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