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평화’주제로 한 제주 이야기” 담아내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개관 …섬 정체성 실천
“제주 토박이도 모르는 내밀한 속살 묘사” 평가
‘제주 열풍’ 속 수 많은 육지 사람들 실천 주역

 

2006년 2월 시설을 재정비해 미술관으로 등록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지금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미술관’으로 불린다. 사진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미술관 전경.

팬데믹 상황에서 맞는 세모는 조용하다. 대통령 선거가 말 그대로 코앞에 다가온 설날 연휴를 지나는 중인데도 그렇다. 2020년 3월 12일 세계보건기구 WHO가 팬데믹을 전격적으로 선언한 이래 익숙해진 우리의 일상 풍경이다.

지난해 1월 31일 이 지면에 ‘사라지는 섬, 쇠퇴하는 인류’라는 제목의 글을 실은 이래 일 년 동안 네 번의 글에서 팬데믹과 새로운 일상(New Normal)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백신과 백신 패스를 통한 면역과 방역의 총체적인 대응에도 일상 회복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섬, 변화의 물결’이라는 주제에 맞추어 모두 다섯 편의 글을 기고할 계획이었다. 첫 번째 글을 경자년 섣달에 시작해서 임인년 설날과 입춘을 넘겼으니 음력으로는 3년째다. 그동안 네 편의 글을 기고했는데, ‘뉴노멀 섬 정체성의 실천’이라는 부제를 담은 ‘그 섬에 내가 있었네’라는 마지막 글이 남았다.

올해는 ‘섬다움의 변화와 혼돈’이라는 주제에 맞춘 글을 쓰기로 했는데, 문득 지난해 마지막 기고문이 생각났다. 그리고 매듭을 지어야 새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지난해 글은 기후 위기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고령화, 그리고 연륙 등으로 섬이 사라지고 있지만, 사라져야 할 것은 도서성을 낙후성과 동일시하는 잘못된 인식이라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했다.

영화 ‘자산어보’의 개봉에 때맞춘 두 번째 글에서는 작가 황석영의 저서 제목인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빌려서 섬에도 섬사람이 살고 있으며, 섬사람의 입장에 서야 섬 정체성을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여름 휴가철 직전의 글에서는 서남해안의 보석처럼 빛나는 섬들의 서로 다른 얼굴은 그곳에 사는 섬사람이 만든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 얼굴은 지금도 변하고 있는 섬의 정체성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일상 회복의 기대가 커졌다. 그동안 고립과 소외로 요약되는 섬의 정체성으로 돌아갈 일은 없고, 그래서도 안 될 일이기 때문에 팬데믹이라는 새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정현종 시인이 쓴 ‘섬’이라는 시구처럼 ‘가고 싶은 섬’이라는 새로운 일상에서 돌아가면 좋겠다는 기대를 담았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섬사람의 입장에서 알 수 있는, 그래서 섬사람이 만들어가는 섬들의 서로 다른 얼굴들을 꼭 쥐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렇게 해서 섬 정체성과 섬사람 이야기를 네 번에 걸쳐 풀어놓았다.

글을 기획할 때에 앞선 네 편의 이야기를 ‘실천’이라는 주제로 매듭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주를 담았던 사진작가 김영갑의 저서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패러디한 제목을 미리 뽑아 두었다. 김영갑 작가는 ‘제주 열풍’이 불 낌새도 없던 1982년부터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사진 작업을 하다가 제주에 매혹되어 1985년 아예 정착했다. 제주 곳곳을 다니며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 등 그가 사진으로 담아낸 것은 제주의 풍경이 아니었다. 그는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사진에 담았고, 사람들은 그의 작업을 ‘수행이라고 할 만큼 영혼과 열정을 모두 바친 것’이라고 평가했다.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던 중에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2002년 여름에 열고 2005년 5월 소천할 때까지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평화를 즐기며 갤러리를 지키고” 있었던 김영갑 작가는 섬 정체성의 실천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었다. 그는 제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누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가 사진에 담아낸 것은 ‘외로움과 평화’를 주제로 한 제주 이야기였다. 그가 찾기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으되, 이야기로 담아내기까지는 세상의 이목을 끌지 못하던 이야기 말이다.

“그 안에서 터 잡고 살아온 토박이들의 눈물겨운 삶을 그만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심지어 제주 토박이들조차도 모르고 살아가는 섬의 내밀한 속살을 그는 무심히 스쳐 가지 않는다.” 출판사의 서평은 당연히 이 위대한 작가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고, 그 시선이 가서 닿은 곳의 의미를 멋지게 담아낸다. 이 서평에 뭉클해진 가슴을 잡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문득 제주에서 20년을 산 제주 토박이, 곧 도민(島民)으로서 지금의 제주 정체성에 한 몫을 당당히 해냈다는 평가가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 문을 연 지 만 스무 해를 맞은 올해, 이 글을 쓰면서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로 137을 찾았다. 친필 서명이 담긴 인쇄본 사진을 건네주며 작가와의 오랜 인연을 이야기해주던 선배 교수가 소천한 지 올해로 10주기가 되었다.

그 사이 제주 열풍이 불어 수 많은 김영갑이 ‘제주 사는 도민’이 되었다. 누군가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여 가슴에 새길 것이고, 누군가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삶을 살아 보여줄 것이다. 이 모두가 제주의 정체성을 실천하는 주역들인 것이다.

글·사진/김치완(제주대학교 교수)

정리/김우관 기자 kwg@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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